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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믘제옹 Aug 28. 2023

지극히 개인적인 회상(2) - 감각의 소중함

혹시라도 당신에게 영감을 줄 지도 모르는, 두 번째 이야기

지금 나는 TV를 틀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TV에서 나오는 영상을 눈에 담고, 영상 속 연예인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귀에 맴돌고,

방금 저녁 요리를 했던지라 입으로 느꼈던 음식의 맛이 냄새의 모습으로 코를 자극하고 있으며,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플라스틱의 딱딱함을 체감하고 있다.


사람의 시간을 1초 단위로 끊더라도 오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은 서로 다른 것을 지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처럼 늘 같이 따라다니긴 할 것이다. 생각보다 오감은 정말 바쁘다.

그리고 시간차는 있겠지만 노화가 진행되면서 각각의 감각은 둔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중에 하나라도 갑자기 없어지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감각 중에 하나가 급작스럽게 사라진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병원에서 큰 사고를 당해 신체기관 중 어느 하나가 크게 다친 환자를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감각이 쉬이 사라진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방금 가정한 상황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다. 나 역시 몇 년 전에 경험했는데, 그 기억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2019년 3월, 나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2019년 하반기의 나는 분명 고등학생이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시간표보다 더 엄격하게 나 자신을 통제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책을 펼쳐서 뭔가를 외우고 있었고, 외워지지가 않으면 더 외웠다. 문제집은 선택지까지 다 외우려고 했으며, 그렇게 산 문제집들은 시험이 끝나고 버릴 때 뿌듯한 마음으로 종이 재활용함에 버릴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몇 개월을 시험 준비에 몰입했으며, 그만큼 간절했기도 했다.


다시 2019년 3월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매일 8시에는 일어났던 내가 오전 9시가 넘어서까지 일어나질 못했다. 시험 앞두고 많이 피곤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아침에 일어나는 동시에 오전은 푹 쉬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귀가 좀 간질간질했다.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주방으로 가 시리얼을 우유에 타서 먹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살짝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시리얼을 먹으면 나는 우득우득한 소리가 왼쪽 귀에서는 분명히 나는데, 오른쪽 귀에서는 그 소리가 수영장 바닥 속에서 들리는 느낌이었다. 이상해서 한번 더 씹었지만 증상은 똑같았다. 아, 그래서 귀가 많이 간지러웠나 보다라고 생각한 나는 면봉으로 오른쪽 귀를 열심히 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 꽤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비인후과로 갔다. 귀가 안 들립니다, 선생님.

의사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시더니, 왜 이제 왔냐며 혼을 내시기 시작했다(병원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았다). '돌발성 난청'이란다. 완치율 30퍼센트란다.

아니, 나는 다다음주가 시험인데 난청이라니? 어제까지 멀쩡했던 귀가?


바로 그 자리에서 청력검사를 했다. 왼쪽 귀는 지극히 정상이었지만 오른쪽 귀는 110 데시벨까지 들리지 않았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최종 진단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고막주사를 맞았다.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오전 11시였는데, 눈앞이 어두컴컴했다. 시험은 어쩌지? 귀가 완치는 될 수 있는 걸까? 스스로 물어보면서 동시에 공포가 샘솟기 시작했다. 왜 나한테 갑자기 이런 일이 (하필 이런 시기에)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망이 들었으나, 그 원망의 대상을 찾을 수 없어 괜히 서글퍼졌다.


다음날 대학병원을 갔고, 또 다음날 다른 대학병원을 갔다. '돌발성 난청'이라는 질환은 상태를 호전시키는 치료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도 대학병원인데 좀 다르겠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들은 영수증과 함께 개인정보를 동의하라는 종이를 내밀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통제집단? 뭐 그런 단어가 써져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치료 경과를 지켜보면서 논문 같은 곳에 결과를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추측이 되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더 해주는 건 아니었다.


치료 과정을 늘어놨다간 이 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중간 과정을 요약하고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내 귀는 결국 완치되었고 나는 좋은 성적으로 시험에 합격하였다. 돌고 돌아 한방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하필 입원 기간과 시험일이 겹쳐 병원에서 외출을 달고 나와 시험을 쳤다. 이 과정에서 의사 선생님과 수차례 협상이 이루어졌다. 시험을 보는 한이 있더라도 건강을 포기하려는 환자와, 시험을 포기하고 건강을 지키려는 의사 선생님의 충돌은 두 가지 결실을 다 얻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을 진단받고 치료를 완료한 날까지 꼬박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시험을 보는 그 시간에도 사실 청력이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의사 선생님은 내가 시험 보러 가는 것을 뜯어말리다시피 하셨다. 인생을 위해 시험 보러 갔다가 귀 상태가 더 악화돼서 종국적으로 인생을 힘들 게 살 수도 있다는 보수적인 가정(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다)이었다. 뭐, 다행히 청력도 돌아오고 시험도 붙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 '돌발성 난청'이라는 것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의 그 무서움은 잊히지 않는다. 치료를 하고 귀가 서서히 나아지는 그 과정도 아직 생생하다. 감각 중에 어쩌면 내 나이에서 가장 당연히 있어야 할 청각이 갑자기 가출을 했고,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매우 시리게 다가왔다. 더 무서운 것은 귀가 나빠지니 균형감각도 사라지고, 두통도 오는 등 다른 곳을 거처로 하는 감각들도 같이 나빠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완치되니 다같이 원래 상태로 복귀했는데, 이게 신기했다고 느끼는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건가 싶다.


이런 경험에서 느낀 점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의 소중함, 감사함'이다. 당연히 잘 보이고(안 보이면 안경을 쓰면 되고), 잘 듣고, 맛이 나고,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 느낌이 있는 것인데 이 중 하나라도 갑자기 사라지면 그 빈자리가 매우 크게 느껴진다. 아니, 빈자리를 느끼기 전에 이미 그 상황에 대해 부정하고 싶어진다. 아마 코로나19가 유행일 때 후각과 미각의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인 중에도 코로나19로 미각을 잃었는데, 냉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집어던지며 고무 씹기 싫다는 투정을 들은 적은 있다.


지금 이 글을 보는 눈에게 감사하고,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귀에게 감사하자.

핸드폰을 들고 스크롤을 하는 손에게 감사하고, 갑자기 주변 냄새가 바뀌는 걸 알려주는 코에게 감사하자.

내일 식사 약속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식사를 맛있게 경험할 입에게 감사하자.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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