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파스타에 대한 짧은 단상
약 6년 만에 보는 면접. 면접은 금요일 3시. 매장 출입문 앞에서 이게 과연 맞는 선택인지 아닌지에 대한 괜한 우려와 긴장으로 엉거주춤하는 사이 나는 2분 늦게 입장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면접관의 첫마디는 “지각이시네요.”라는 싸늘한 한마디. (아차. 이거 시작도 전에 망했구나.)
아무튼 면접은 시작됐다.
“왜 하던 거 계속 안 하시고 이걸 하려고 하세요?”라는 질문에 “다른 일도 한번 배워보고 싶어서요.”라는 누구나 내뱉는 거창한 개소리도 싫고 “양식 쪽은 이제 인력들이 너무 젊어져서 저도 이 나이가 되다 보니 어디 들어가기가 상황이 좀 안 좋습니다.”라고 말하기엔 너무 쭈글거리는 포지션이었다.
(실제로 양식분야는 20대 친구들이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만큼 몰려있다. 잡코리아에서 구인하는 식당 한 곳만 들어가 봐도 지원자 연령대 분포가 나온다.)
그는 꽤 많은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바오라는 빵을 다루니 빵을 반죽하고 발효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바오를 상황을 봐가며 쪄야 하고, 튀김기에서 튀김도 튀겨야 하고, 불판 앞에서 파스타도 볶고 탕면 요리도 해야 한다고.
물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도와주겠지만 할 수 있겠어요? 라는 무언의 압박.
잡코리아를 열심히 뒤적거리며 이력서를 10군데가 넘게 넣은 곳 중에 양식과는 관련 없이 분야도 같이 호기심(사실 내 처지에 갈만한 데는 많지 않다는 판단하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으로 넣어 본 뒤 딱 한 군데 지금 퓨전 중식을 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지만 지금 이렇게 망한 거 같고 내가 몸담던 분야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기분이다.
어떤 종류의 파스타를 했냐는데 뭐 사실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다.
파스타의 제목이 뭐가 중요한가. 한 그릇에 구성되는 재료와 익힘과 육수와 소스의 투여 여부. 그리고 만드는 이가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조리과학의 원리를 부여하면 끝인 것을.
그런 유의미한 질문을 받고 오래전 만들어본 것 중에 뭐가 있었나? 하며 생각이 나는 종류를 몇 가지 입으로 끙끙 앓으며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참 무안해진다.
팬 안에서 열에너지가 활성화되면서 면이 뱉어내는 전분과 남은 수분을 올리브기름과 함께 마지막 순간 합쳐내는 유화 작용을 설명하려는데 언어는 갈 곳을 잃고 내뱉은 말은 버퍼링 걸린 듯이 버벅거린다.
결국 내가 긴 세월 애를 쓰며 해왔던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절망적 순간이기도 하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화학적인 작업을 하나로 통합해서 요리라고 지칭하기엔 각개의 간격이 너무나도 멀다.
생각해보니 어떤 파스타 할 줄 아냐는 식의 질문은 꽤 오랜 시간 이태리 음식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파스타는 뭐 할 줄 아세요?”라는 질문은 중식을 하는 사람한테 “짜장면, 짬뽕 중 어떤 종류 할 줄 아세요?라고 묻는 거랑 뭐가 다를까? 그런 질문이 혹여나 결례인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 나는 그날 밤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