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족'기

by 산이세라

매주 연습 기록을 적으려고 했는데 역시 흔적을 남기지 못한 채로 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평일 저녁에 두 번쯤 연습이 있었고 나머지 연습들은 주로 토요일 오후시간이었다.

3시부터 시작해서 6시에 끝나는데 어찌나 몰입을 했는지 연습이 끝날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매번 "안 돼, 끝나면 안 돼"라며 저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온통 몰두했던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이 어려워 이 정도라면 '중독'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주말을 온통 연주에 마음을 쏟고 나면, 정말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일이 낯설어진다.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았던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혀야만 한다.

아... 이렇게 좋아할 것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을까...

때로 너무 사랑하는 것은 다가가기 어렵고,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상처가 더욱 크기에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있었던 걸까? 굳이 '음악 싫어한다'라고 표현까지 하면서... 나는 너무 멀리, 너무 오랫동안 그 세계로부터 떠나 있었던 거였다.

지나치게 깊이 몰두하고, 그 몰입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어려움이 힘들어서, 어떤 대상에게도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너무 차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죄"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의미심장하게 인용되는 요한계시록의 구절이다.

"너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적당한 거리'를 위해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고 원하는 것, 이끌리는 것에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저항하려는 마음... 과연 무엇을 위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을까?

류시화가 엮은 시집 제목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은 그렇게 어른이 되고, 사회적인 인간이 되어가며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거리두기'에 익숙해진 마음에게 충고하는 말이었을까?

결국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것에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겉도는 인생만을 살다가 죽음이 가까워질 때에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일까?

'거리두기'를 유지하는 삶은 망가지지 않고 온전하게 보이기 위한 삶이었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내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온통 시선을 의식하며 사회적으로 온전해 보이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일 수도.

지난 독서모임에서 근황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어느 분이 남편에게서 "본분을 잊지 말라"는 말을 듣고, 그 '본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마침 주말에 연습에 다녀오고 나면 한참 동안 꿈을 꾸다 깨어난 것처럼 현실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고 나의 근황을 이야기한 직후에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그 말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고,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야말로 '본분'을 한참 잊고 분에 넘치게 현실로부터 벗어난 일을 하고 있는 거였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예전 같았으면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고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으려고 했던 주말 시간을 밖에서 떠돌다 오는 것이기에 아직 아이를 독립시키지도 않고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유일하게 모일 수 있는 토요일의 저녁 시간을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도 당연한 의무처럼 그것을 요구했었을 것이고...

'가족과의 주말 시간'에는 오랫동안 나 자신이 집착하고 얽매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매년 졸업생 연주회 시즌 때마다 고민하다가 결국은 외면했었고, 나에게는 '이미 지나간 일'로만 여기며 더 이상 연주하지 않고 있었던 동안에 15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있었던 거였겠지...

'가족과 함께'를 지키려고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의 이끌림 때문이 아니었고, 점점 더 지켜야만 하는 '형식'과 같았다. 가족이라면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이상적 모습을 단순히 재현하기 위한 반복과 같았다.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나의 '본분'은 아직까지도 집 안에서의 역할로만 규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그렇게 가둔 것은 다른 가족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스스로 자유롭게 풀어주고, 그렇게 다른 가족들도 나의 집착으로부터 풀어주어야 했다.

언제까지나 가족이라는 하나의 단위에만 얽매여 똘똘 뭉쳐서만 살아가야 할까?

어린 아기를 키워내기 위해 둥지 속에서 지나치게 충실했다.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 나의 이끌림이었고, 나는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할 만큼 아이에게 이끌렸으니까...

하지만 점차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아이를 독립시키기 위해 우선은 나 자신부터 자유로워졌어야 했을 것이다.

외부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가족'에게만 지나치게 충실하려고 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시 세계와 연결되려 하고 있다.

독서모임의 어느 분은 아이를 키우던 십여 년의 시간이 텅 빈,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의 뉘앙스는 '회한'의 느낌이었다.

십오 년의 공백 이후 다시 연주를 하는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그 사이 십오 년씩이나 지나버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느껴졌다.

십오 년의 시간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많이 성장하고 그 시간에 온전히 몰입했고,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이었지만, 연습을 하러 갈 때는 세월을 거슬러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라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텅 빈 시간처럼 느껴진다. '회한'은 아니지만...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사람들도 나이를 먹었지만, 나이가 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냥 그때의 선배님, 지휘자님, 그때의 사람들, 그때의 음악과 오케스트라 소리들이 그대로 거기 있을 뿐이다.

그러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되돌아올 때는 그 시간을 다시 순식간에 리셋을 해야 하기 때문에 멀미를 하는 것처럼, 되돌아가기 싫은 저항감마저 느끼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육아기간 동안 나는 음악보다 아이를 훨씬 사랑했기에 미련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정말 음악을 사랑했었고 연주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재발견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를 높게 두르고 그 안에서만 '사랑'을 찾고 시선을 가두고 그 너머의 세계는 전혀 보려고 하지 않다가 이제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시선을 넓혀 '사랑'이 도처에 있음을 발견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오늘 브런치북 제목을 '출가족기'라고 정해보았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출애굽기'를 패러디한 '출소록기'라는 소제목을 패러디해서 '출가족기'라고.











이전 09화행복한 시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