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수많은 책들을 아무리 읽어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빈집 같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비어 있는 공간
그 빈 곳에
그날 손에 들고 있는 책의 문장들이
그때그때 지나갈 뿐
어떤 때는 속독으로 빠르게
어떤 때는 잡념들과 뒤섞여서
집중을 놓아버리면
어느새 잡념들이
빈집을 가득 채워 버리고 만다.
책을 안 보면
스마트폰이나 카톡이
그래서 황급히
'책이라도' 들여놓으려고
머릿속은 늘 자리다툼 중
책에 쫓기며
필름이 몇 배속의 속도로 돌아가던 머릿속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
책을 잠시 비운 동안
그 빈 공간에
들어와 재빨리 마음껏
자리를 차지해 버리고 마는
불편한 생각들
집을 비워놓는다고
어디로 간지 모르는
어디에 있기나 한 건지도 모르겠는
그 누군가인 나는
돌아오지 않는데
불편한 생각들을 몰고 오는 내가
힘이 세고 빠르니까
일시 정지 버튼
해제하고
책으로
다시
굴러가야 하려나
나는 그때그때
빈집을 차지하고 있는
그 무언가의 나일뿐
아무리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온통 휩쓸고 지나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여전히 텅 비어버리는
빈집
텅 비어 있는 빈집을
차지하려고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불편한 생각들
(2024.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