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12
정신이라는 말
생각을 멈추면 시곗바늘처럼 움직이는. 기계로 돌아가고 마니까. 태엽을 감고 프로그램에 따라 돌아가다가 내가 왜 이렇게 쳇바퀴처럼 반복해서 돌아가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는 상태...
영원한 것은 없기에 그토록 허탈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자체로의 영원함. 그 순간은 영원보다도 더 깊숙이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고 확장될 수 있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찰나의 그 순간처럼.
영혼과 영혼이 만나기 때문이 나이를 의식하지 않음. 영혼이 열리면
살아 있으니까 보는구나. 하지만 살아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항상 부끄러웠다.
세상에서 내 흔적을 지우고 싶었고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이름이 불편했고 내 모습이 불편했고...
그것들을 대면하기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마음...
이게 '나를 위한 글쓰기'가
나를 변화시킨 작용이었을까?
존재를 지우고 싶은 사람에게
책으로, 글로 남겨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부끄러운 일이었을 거다.
책 내라고 하는 말들
그 말조차 여전히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목소리에 대해... 외모보다 목소리가 존재 그 자체를 설명해 주기 때문일까.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데 언어는 방해물인 경우가 많다. 손과 손이 만나고 싶어 하는데, 손을 잡아도 될까요?라고 묻는 순간, 손을 잡고 싶었던 존재는 사라져 버리고 언어로 이루어진 질문과 대답만 남을 테니... 손잡고 싶던 존재들은 이미 저 멀리 떠나가버린 후가 될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감정 과잉, 유치한 감상이 되는 것을 경계하여 비인간적 경지를 추구하자니 냉혹하고
스토너가 캐서린과 헤어진 것도 사랑의 한 형태였다고 생각한다. '한계에 갇히지 않고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어 더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하는 사랑'처럼... 꼭 옆에 붙어 있고 영원히 함께 해야만 사랑은 아닌 듯해서...
몸으로 돌아오라는 감각을 일깨우려는 존재들...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이라고 죄악시하며 멀어지고자 애쓰고, 멀리하려고 했던... 대지로 나오기를 손 내미는 존재들. 이미 그곳에 있는 자들?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Mess es Sein? Es muss sein
고문을 하듯. 속죄하듯 책을 봤던 걸까
기계처럼 프로그래밍되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몸부림이었을까? 약속하기 싫어하는 마음, 예약하기 싫어하는 마음... 그때그때의 의지대로 하고 싶지만... 몸은 자동으로 준비되는 기계가 아니고 싶은 마음...
*8. 23.
한 시절을 무덤으로 보내고 애도의 기간을 거쳐 그 시절이 괴로웠다면 그 시절은 긴 죽음 속에 묻혀버리기를... 그렇게 죽음의 저편으로 보내버린 기억들. 상실된 기억들... 내가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나의 세계 안에서 단지 죽어 있는 사람일 뿐. 이미지일 뿐. 환상일 뿐. 살아 있는 그 사람은 더 이상 거기 없다.
상처들이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과거를 부활시켜 대면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마주치기 두려웠던 과거, 과거의 나... 나를 위한 글쓰기가 살려내는 건, 그렇게 묻어버린 과거의 무덤 속에 사람들이 있었음을, 그 관계들을 발견하고 아픈 기억과 함께 묻어버린 '사랑'들을 되돌리고, 부활시키고, 관계의 소중함을 발견해내고자 하는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