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한 군인은 영웅인가?
오늘은 계엄령과 항명 군인에 대해 무거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필자는 7년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 보급장교임에도 3년여 기간을 함정(육군으로 치면 야전이나 최전방)에서 보냈으며, 하루하루 군에 충성하며 살았다. 영광스럽게도 몇 차례 표창을 받았고, 순항훈련을 통해 세계일주 했으며, 위탁교육에 선발되어 미국 본토에서 3개월을 보내기도 했다. 군은 필자에게 각종 시련과 기회를 통해 성장하게 해 준 특별한 존재이다.
계엄령이 떨어진 날 12월 3일 저녁, 직업군인 출신인 필자는 다양한 생각에 휩싸였다. 걱정과 두려움 속에 뉴스 기사와 인스타로 실시간 소식을 확인하는 아내에게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그다음 날 새벽 네시에 악몽으로 뒤척이다 눈을 떴다. 망망대해에서 실전배치 함내 방송을 들으며 작전하던 때의 긴박한 기억이 꿈으로 나와 필자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긴박하고 무서운 것이다. 실전 상황을 직접 겪고 또 그 속에 있었던 필자에게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 합법적 폭력(군 작전)의 기억이다. 함정 근무 중 실전배치 함내 방송을 듣자마자 밥 숟가락을 던지다시피하며 카포크재킷(구명조끼)과 안전모 하이바를 들쳐 들고 승조원과 어깨를 부딪치며 수직계단을 뛰어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폭력을 다루는 집단에서 7년을 근무했기에, 너무도 그 잔혹함을 알기에,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그 속성이 두렵기에, 필자에게 계엄령은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계엄령이 떨어지고 그 흐름 속에 필자가 주목한 건 '항명'이다.
* 사실, 아직도 정치인의 잇속은 모르겠다. 정치는 정당 간의 의견 충돌이고, 또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 사태가 끝나고서 필자가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점은 군인의 항명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이 가장 두렵게 느껴진다. 군인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건 국민의 안전에 아주 위험한 시그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내 어떤 조직도 군을 물리적으로 견제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군조직이 마음만 먹으면 Military Coup, 일명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는 게 전세계적 역사적 진실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쿠데타는 늘 있어 왔다. 최근 200년의 굵직한 기록만 살펴보아도, 1851년 프랑스에서부터 2021년 미얀마에 이르기까지 약 40번이 훌쩍 넘는 쿠데타가 있었다. 횟수로 보면, 5년에 한 번 꼴로 폭동이나 쿠데타로 국가 전복이 이뤄졌다. 그나마 군사 독재로 가지 않고 내전으로 제압되면 다행(?)이나, 이러나 저라나 피해는 무고한 국민들이 온전히 안게 된다.
* 1851년 12·2 쿠데타 (프랑스), 1922년 이탈리아 파시즘 쿠데타, 1923년 뮌헨 폭동, 1932년 태국 쿠데타, 1943년 아르헨티나 쿠데타, 1953년이란 쿠데타, 1961년 5·16 쿠데타 (대한민국),1973년 칠레 쿠데타, 1974년 포르투갈 좌파 청년 장교 쿠데타, 1976년 아르헨티나 쿠데타, 1979년 12·12 쿠데타 (대한민국), 2020년 말리 쿠데, 2021년 미얀마 쿠데타 등
더욱 안타까운 건, 이번 계엄에 항명한 군인들을 마치 영웅인 것처럼 언론에서 치켜세운다는 점이다. 계엄은 실패해 마땅하나, 그 방법이 군인의 항명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직업군인 출신인 필자이지만, 군인은 스스로의 기능(국가 방위와 국민 안전 보장)만 충실히 하면 그뿐이라 생각한다. 전쟁 중에 영웅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 군에 (외부로 알려질) 영웅은 굳이 필요 없다. 항명 군인이 영웅이 되는 건 더더욱 위험하다고 본다.
비약일 수 있지만, 항명 군인을 치켜세우는 현재의 추세가 계속되면 군 내부의 항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명령하는 자와 수명 하는 자로 나뉘던 군조직의 의사소통에, "왜?"라는 물음이 생기는 건 좋은 흐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군조직은 수평적 대화나 토론과 같이 민주주의가 적용되지 않고 군법이 적용되는 특수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항명의 추세로 내부적인 갈등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항명하는 자는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이런 흐름은 단결을 저해하고 국방력을 약화시킬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른다.(이는 다시 국민의 안보불안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또한, 혹여나 현 정치 세력에 앙심을 품은 군 조직이나 모종의 정치세력과 결탁한 군 조직의 국가 전복(쿠데타)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다소 영화적인 상상까지 이어진다.
즉, 필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계엄령은 실패한 게 맞으나, 그 이유를 군인의 항명에서 찾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금도 내부적으로 조각조각 분열되고 있는 군 조직의 흐름을 가속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항명 군인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보도는 지양되었으면 한다. 그게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굵직하게 2번이나 쿠데타가 있었던걸 감안하면, 정치와 군은 더욱 분리되어야 한다.
* 혹자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필자를 다그칠지 모른다. 계엄이 실패했기에 우리가 안전한게 아니냐고 말이다. 만약 현정권의 계엄령이 성공했다면, 항명하지 않고 충실했던 군인들 때문이지 않냐고. 필자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정치싸움에 군인을 탓하는건 잘못되었으며,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생각한다. 계엄령은 실패했고, 그 스포트라이트를 항명한 군인에 비추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