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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Dec 17. 2023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는 순간

_ 재활치료실에서.




급성기 환자의 재활치료는 운동치료 두 번, 작업 치료, 물리치료, 그 외 기구 운동 두 가지로 이뤄진다.

대개 기구 운동은 '기립대'와 '코끼리' 두 가지로 진행되는데, 그중 기립대는 뇌졸중 마비 환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상실해 버린 서 있는 자세를 경험하며 그 감각을 유지하고, 근력과 균형 감각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는 기구다. 

엄마가 기립대에 서계셨던 그날은 벚꽃 망울이 움트던 이른 봄날의 오전이었다. 

재활치료실 창문의 아래쪽 절반은 시트지로 가려져 있고 위쪽만 투명했다. 성인이 고개에 살짝 들어야 먼발치에 오가는 행인들을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바깥 날씨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마치 창밖 대로변에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바로 얼마 전까지 당신들의 것이었던 그 모습을 보지 않는 편이 낫다는 듯.  

시트지가 없는 창을 통해 부드럽게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내리고 있던 그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병실에 필요한 물건이 있어 잠시 다녀오는 길이었다.

재활치료실 안쪽 끝에서 햇살을 받으며 기립대에 서계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고개를 살짝 좌측으로 들어 건물 사이로 드러난 하늘을 보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멈춰서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기립대에 서서 엄마처럼 생각에 잠긴 듯한 사람들의 뒷모습. 그 옆으로 '코끼리'에 앉아 마비가 있는 팔은 손잡이에 동여매고 '달달달' 페달을 돌리는 사람들. 치료사와 1:1로 운동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때로 인지가 없어 그저 치료사가 움직여주는 대로 누워만 있는 사람들. 

소중한 것을 되찾기 위한 그들의 모든 움직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애틋한 마음이었다. 생의 어느 시점에  아기처럼 앉고 일어서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갑작스러운 불운을 마주한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은 다 걸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지켜본 사람들도 그러했다. 1년이 지나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셨으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다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엄마가 재활병원에 입원하신 뒤로 길을 걸으며 재활병원, 요양병원이 그렇게 눈에 들어온다. 건물을 보면 그 간판들이 그냥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여태껏 딱히 관심도 없고 몰랐던 재활, 요양병원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그 안에 이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뜻이다. 그들은 대개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많은 경우 휠체어가 필요한 뇌병변 장애인이 되는데, 그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걸까?

분명히 존재했으나 나에게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이 세계는, 내가 인지하지 못하던 세월 동안 내 세계가 그러하듯 계속해서 이어져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치열하고 누군가는 무기력하며,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는 울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불운 앞에 갈팡질팡했을 것이며, 누군가는 변해버린 자신의 신체에 좌절하고 또 적응해 나갔을 것이다.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지겠구나.' 그때 그런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세계에서 엄마와 나는 빠져나갈 수 있을까. 

엄마는 이전의 건강했던 삶으로 온전히 돌아갈 수 있을까.  

믿고 싶었다. 엄마는 아직 가능성이 많은 급성기 환자니까. 그저 최선을 다해 그것을 내가 돕겠다는 다짐을 하며, 봄날의 햇살이 감싸고 있는 엄마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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