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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Dec 18. 2023

음악은 우리 삶을 관통하여 흐른다.

_ 재활병원 옥상에서 꿈꾸다.

Nella fantasia (넬라 판타지아) 


                                                  - Sarah Brightman (사라브라이트만)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정의로운 세계를 봅니다.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그곳에서는 모두가 평화롭고 정직하게 살고 있습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난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Come le nuvole che volano,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Pien' d'umanità in fondo all'anima.

내 영혼 깊은 곳엔 자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나는 환상 속에서 

Li anche la notte è meno oscura.

밤조차도 어둡지 않은 밝은 세상을 봅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난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Come le nuvole che volano.

항상 자유로운 정신을 꿈꿉니다


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환상 속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있습니다 

Che soffia sulle città, come amico.

마치 친구처럼 도시에 숨결을 불어넣어 줍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Come le nuvole che volano,

나는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Pien' d'umanità in fondo all'anima.

내 영혼 깊은 곳엔 자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산의 어느 재활병원 옥상, 엄마와의 시간.



급성기 환자의 치료 스케줄은 다소 바쁜 편이다. 우리는 비급여인 로봇보행치료를 추가한 데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 있는 한의원도 다녔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점심 이후 진행되는 치료 시간 사이 30분 정도 여유가 생기는데 그때는 주로 병원 옥상으로 갔다. 


건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해운대 도심 병원에서 엄마를 모시고 갈 수 있는 가장 자연친화적인 공간은 그 당시에는 병원 옥상이 유일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잔디밭도 있고 벤치가 네다섯 개 놓여 있었다. 팔, 다리를 모두 걷어붙이고 앉아 햇볕을 쬐며 하늘도 올려다 보고, 바람결도 느끼는 시간. 


그날은 유독 햇살이 따사로웠다.

듣고 싶은 노래가 없다는 엄마를 위해 내가 선곡한 곡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Nella Fantasia'



<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밤조차도 어둡지 않은 밝은 세상을 봅니다. 

환상 속에는 따뜻한 바람이 있습니다.>



밤조차도 어둡지 않은 세상이라니.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 잠시나마 잊히는 것 같았다. 가장 기막힌 심정일 엄마가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마음만은 자유롭길 바랐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천상의 목소리가 엄마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은 순간, 나는 그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느낌에 눈을 지그시 감고 계신 엄마 얼굴, 햇살, 바람, 하늘 모든 것을 박제하듯 눈에 담았다


사라 브라이트만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다. 동그랗고 창백한 얼굴에 가지런하게 묶어 내린 아주 긴 머리, 연분홍 드레스에 보랏빛 숄을 두르고 있는 고혹적인 자세. 사라 브라이트만의 첫 앨범 <Time to say good bye>. 친구가 주야장천 반복해 듣던 그 카세트테이프 케이스를 보고선 어느 주말 서면 지하 레코드사로 갔다. 그렇게 사라 브라이트만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6개월 전인 2001년 여름 첫 중국 여행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초대받아서 간 중국인 친구의 방 안이었다. 중국은 CD가 매우 저렴해서 여행할 때면 CD를 예닐곱 개씩 사서 들고 다니는데, 그중에 하나가 사라 브라이트만의 것이었다. 약간의 궁금함, 그러나 무심하게 이어폰을 끼고 첫 곡을 재생시켰다.


 '딴~딴딴딴딴 딴~~~ ' 전주가 나오는 순간, 침대에 반쯤 엎드려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뭐지???' '세상에 이런 곡이 있다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메인 테마인 ' Phantom of the Opera'. 전주가 충격적으로 좋았던 나는 역시 그날의 적당히 시렸던 방 안 공기까지 다 기억한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이 내한할 때마다 서울로 부산으로 쫓아다니며 가장 앞자리를 사수하는 열혈팬이 되었다. 


2004년, 임용에 합격하고 첫 월급이 나올 즈음. 다음 메인 화면에 사라브라이트만 내한공연 소식이 전해졌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나는 이제 그만한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을 왕복할 경제적 여유가 있다. 공연일은 평일이었다. 문제 될 게 없었다. 조퇴하고 기차를 타고 올라간 다음, 심야버스를 타고 내려와 바로 출근하면 되니까.


투어 타이틀이 앨범명과 같은 HAREM이었다. 타이틀곡 HAREM의 신비로운 전주가 흐르고, 암전 된 무대 속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이 걸어 나왔다. 눈물이 흘렀다. 고생해서 합격한 임용, 첫 월급으로, 서울까지 와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꿈같았다.


2016년, 엄마를 서울로 모시고 올라가 재활하던 때였다. 사라브라이트만의 내한공연 소식이 들렸다. 이번엔 엄마와 함께 가기로 했다. 엄마에게 이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 드리고 싶었다. 공연장이 올림픽 체조경기장이어서 조금 일찍 가서 올림픽 공원을 산책했었다. 엄마는 거대한 오륜기와 날갯짓하는 듯한 88 올림픽 기념탑을 보며 기뻐하셨고, 나란히 도열된 만국기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그곳을 좀 걷자고 하셨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공연은 공연장 안에서의 기억이 없다. 공연이 어떠했는지, 나는 그리고 엄마의 표정은 어떠했는지 정말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가끔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방금 전에 들었던 대사나 특정 장면을 기억하지 못하고 심상만 남기도 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억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날 엄마와 함께 걸었던 올림픽 공원, 푸릇한 나무를 보며 하던 엄마의 심호흡, 만국기 사이를 걸으며 좋아라 웃던 엄마의 웃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연이 우리의 배경음악이었던 하루. 


평소에 항상 음악을 듣는다. 늘 내 삶의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 

음악이 내 삶을 관통하여 흐르는 것이 좋다.

어쩌면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씨줄과 날줄 삼아 훗날 꺼내어볼 예쁜 추억을 직조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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