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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Jan 01. 2024

나에게 쓰는 편지

_ 글쓰기로 맞이하는 새해 카운트다운


2023년을 보내고, 2024년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



초등학생 1~2학년 때 즈음으로 기억한다.


미소년 같은 이미지의 가수가 등장해 생소한 영어 랩을 하는데 어찌나 간지 나던지. 동생도 나도 잘 알지도 못하는 영어 가사를 어설픈 발음으로 따라 하며 그의 멋짐이 내게도 뚝뚝 흘러넘치길 기대했었다. 그 가수는 철학적인 가사로 한없이 사유하게 하는 노래를 불렀고, 부당한 것에 독설을 서슴지 않았지만 약자에게는 따뜻했다. 그는 불의의 의료사고로 너무 일찍 떠나버린 신해철 님이다.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나는 신해철 님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했다.

그 의미를 뭐 얼마나 깊이 이해했겠냐마는, 어려서부터 나 자신과 대화하기를 즐겼던 나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잃지 않아야 할 진짜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고, 돈, 큰 집, 빠른 차, 명성,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 말고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으며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2023년을 보내는 밤. 

오늘 하루도 내 몫의 삶을 반듯하게 잘 살아낸 밤.

집안을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매만지고, 카페에 가서 한 해를 정리하는 글을 몇 개 쓰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따뜻한 물에 샤워한 후 책상에 앉았다. 너무나도 글을 쓰면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2024년 한 해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나의 열망이 담긴, 단출하지만 경건한 의식과도 같다.  


글을 쓰며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기로 한 순간, 나는 왜 신해철 님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고 싶었을까. 


2023년의 진화는, 멈춘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너무 멀어 희미한 어떤 것을 붙잡기를 꿈꾸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방향을 읽을 수가 없어서, 그냥 달렸다. 칼바람을 이고 달렸다. 그렇게 다만 한 걸음씩 걸어온 나의 한해를 걸음걸음을 되돌아보니,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2023년 12월 31일의 진화가 2023년의 진화에게,

2023년의 진화가 지난 힘든 시간 속의 진화에게,

너무 애썼다고, 참 잘해왔다고, 다시 너의 때가 오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는 네 삶이 '엄마가 쓰러지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바라고 이내 회의했지만, 너의 삶은 엄마가 쓰러지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더 넓고 깊은 빛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해주고 싶다.


너무 많이 고통스럽고 외로웠다. 

엄마, 아빠의 삶과 트라우마를 이고 지고 가며 엄마의 삶을 보살피고 아빠 역시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아무리 애를 써도 쉬이 풀리지 않는 현실에 자주 폭발하는 내 감정과 내 바닥을 보고서

'그런 나'라도 다짜고짜 끌어안아야 계속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끼는 존재의 행불행의 키를 쥐고 그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결정권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아무리 진심과 열심을 다해도 이를 곡해하는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던 남자친구만이 유일한 기댈 곳이라 썩은 동아줄인 줄 알고도 부여잡으며 처절하게 울던 날들이, 

그리하여 차마 쏘아붙이지 못하고 삼켜야 했던 말들과 차오르는 분노에 치를 떨며 시간을 견디던 내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2023년을 살아낸 나는 많이 달라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설레는 것들이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고 싶다.

또다시 힘든 시간이 온다 해도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여유와 자기 확신도 생겼다.


감사가 절로 나오는 밤.

좋지 못한 것들이 서서히 물러가고, 슬며시 다가와 그 자리를 채우는 기회와 꿈.

그리고 내 곁으로 와서 크고 작은 마음을 건네주고 새로운 기회를 보여주는 사람들. 

가깝고 먼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응원을 있는 그대로 담아 2024년으로 가려고 한다. 


(지금 막, 2024년이 되었다!!) 


조급해하지 않고 나의 속도대로, 나만의 길을 가만가만 살펴가고 싶다.

모두가 추천하는 길 말고, 내 눈에 아름다운 길을 따라. 



https://youtu.be/HRlwPwqC-Y0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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