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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고싶은JH Dec 14. 2023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_ 보호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적인 정보에 대해 말하다.



엄마는 뇌혈관의 출혈이 멈춘 상태라 준중환자실로 배정되었다.


진주에 사는 둘째 언니가 부산으로 와서 아버지와 함께 낮 동안 엄마를 돌보았고, 나와 큰 언니는 퇴근하고 나면 곧장 병원으로 가서 교대로 밤을 지새웠다.

재출혈의 가능성도 있었고, 엄마가 링거 줄을 뽑아버릴 기세로 심하게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댔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교대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밤을 지새웠다.  2월 초라 여전히 추웠다. 언니가 보호자용 침대에 누우면, 나는 의자를 놓고 엄마 옆에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보다가 엄마가 미간을 찌푸리거나 몸부림을 할 때마다 링거줄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그러다 너무 졸리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잠시 잠깐 앉거나 누웠다. 차갑고 딱딱한 병실 바닥의 감각에 내가 처한 현실을 떠올려 정신을 가다듬다가, 동이 트면 서둘러 출근했다. 


출근해서는 그동안 엄마와 함께한 35년 세월 동안 인상 깊었던 장면이 담긴 사진을 출력해왔다. 그리고 매일 아침 사진을 보여드리고 사진 속의 인물과 우리의 행복했던 날들에 대해, 엄마의 역사에 대해 들려드렸다.  지금은 아들, 딸 이름도 모르는 엄마가 빨리 기억을 되찾으시길 소망하면서.


낮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드렸다.

이미자의 '섬 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조미미의 '서산갯마을'.

분명 엄마는 눈만 껌뻑거리고 계셨는데, '섬 마을 선생님'을 들려드리자 전주가 나오자마자 울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처한 상황을 조금은 느끼시는 걸까. 그 노래와 함께 한 세월이 엄마 몸과 마음에 새겨진 탓일까.  

엄마 곁을 지키는 마음은 그렇게 진심이었는데, 그때의 우리는 많이 서툴렀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사실이 많았다.


엄마는 응급실에 계실 때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도 굉장히 괴로워하며 뭔가를 말씀하셨다.

발음도 채 되지 않아 웅얼거리는 엄마 말을, 안타깝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의식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으면 반복해서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셨지만 계속해서 우리가 못 알아듣자 울먹이듯 한숨을 쉬셨다. 틀니. 알고 보니 틀니를 빼달란 말씀이셨다. 

나중에야 안 사실은, 뇌출혈과 함께 몸의 절반에 마비가 오면 좌우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래서 틀니처럼 몸에 장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제거를 해야 된다고 한다.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했을 때의 매뉴얼처럼 뇌출혈 환자에게도 당연히 따라야 할 매뉴얼 같은 것인데, 의사들은 체크하지 않았고 엄마는 뒤틀린 입에 맞지 않는 틀니때문에 굉장히 고통스러워야 했다.


준중환자실에 있는 3주 동안 우리는 엄마를 가만히 눕혀뒀다. 다른 환자들도 거의 누워만 있었으니 우리도 행여나 또 혈관이 터질세라 조심조심. 소화를 시킬 때도 침대 헤드만 살짝 들어 올린 채 조심조심. 

언니와 내가 병실을 지키기로 하면서 뇌출혈 관련 카페를 검색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해주는 역할을 동생에게 맡겼다. 지나고 보니 뇌출혈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출혈이 안정되고 난 직후부터 최대한 빠르게 몸을 움직이고 재활을 시작하는 것인데 아마 동생이 첫 직장에 취직을 하고 많이 바빴던 모양이다.  


" 여기서 어머니 상태가 가장 좋은데, 자꾸 일으켜 세우고 걸리고 해야지 왜 그렇게 있어요. 내가 보기 안타까워서 그래요." 3주가 다 되어갈 때쯤에야 옆에 있던 간병인분이 말씀하셨다. 그리고 재활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스스로 곧게 앉아있을 수도 없는 엄마를 어떻게 세워서 걸려야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여기서 치료받고 퇴원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병원을 또 간다는 건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싶었다. 무엇보다 의사선생님이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인턴이 올라와 느닷없이 병실 커튼을 열어젖히더니 병실을 비워달라고, 퇴원을 종용했다. 급한 환자가 들어온 것 같은데,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던 우리는 " 급하게 퇴원시켜서 재출혈이라도 나면 책임 지실 거냐? "라며 하루 이틀을 더 버텼던 것 같다. 그러고는 급하게 재활병원이란 곳을 알아보고 전원을 했다.


3주 동안 의사는 매일 회진을 돌았고, 간호사들과도 잘 지냈다. 

어떤 식으로든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빠른 회복을 돕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사실. 지금 엄마가 그런 상태라는 사실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다음 스텝을 전혀 몰라 질문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왜 병원 측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이 병은 출혈 상태가 안정되면, 재활병원으로 옮겨 몇 개월씩 재활을 해야 하니 병원을 미리 알아보고 준비하라는 치료 방향을 설명해 주는 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매일 아침 회진을 돌던 의사는 '지금은 안정되었다. 재출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이제 휠체어 한 번 태워봅시다.'  '물리치료(병상에서 하는) 한 번 해봅시다'라는 말 외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밤중에 올라와 급하게 다음날 퇴원을 종용했던 인턴은 우리가 전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지부터 확인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무런 준비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재활병원으로 옮겨 재활을 시작하는 게 지금은 훨씬 시급하다고 빨리 재활병원을 알아보라고 알려줬다면, 재활병원의 목록을 제공하고 전원을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있었다면, 바로 수긍하고 움직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간병인들은 같은 병실에서 '참 효녀다. 엄마한테 너무 잘한다.'란 말만 반복할 뿐 조언을 좀 해주었다면 어떨까.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보통의 사람들은 이 병에 대한 중요하고 기본적인 정보들을 병원 측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생에게 검색 역할을 맡겨두고 병실에서 엄마를 돌보는 것에만 집중한 나의 부족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온전히 환자 보호자 개인의 몫일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과 우리의 무지가 엄마의 상태를 얼마나 뒷걸음질 치게 했을지 알 수 없다.

더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기회, 손가락으로 가벼운 무엇 하나라도 쥘 수 있는 신경을 살려낼 기회. 이런 것을 얼마나 흘려보내버렸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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