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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곳에서 울다

오래된 글을 밖에 내놓는다.

by Pelex

프롤로그:

오래된 글을 밖에 내놓는다

수첩 속 먼지에 잠겨 있던 문장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마음의 파편들이다.

그 시절, 나는
소리도 나지 않는 울음을 매일 삼켰다.

아파트 옥상 난간에 서서
바람에게만 내 마음을 흩뿌리던 날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를 버티며 견디던 시절이었다.

본문:

직장을 내려놓고

엊그제 직장을 내려놓았다.
평생 몸에 밴 습관대로
새벽 여섯 시면 눈을 뜨고
신문을 넘기며 몸을 움직여보지만
향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내의 잔소리를 피하고
아이들 선생이 들락날락하는 소리에도
괜히 마음이 무거워
그냥 집 밖으로 나섰다.

갈 곳도,
전화 올 이도 없었다.

스팸 문자 하나 울려도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묘한 안도감이 스쳤다.

도서관에 앉아
신문 글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 안에서 마음이 붙잡히는 것은 없었다.

세상은 늘 뉴스로 떠들어대지만
내겐 단 하나의 바람만 있었다.
다시 어디선가 일할 수 있기를.
아직 더 뛰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었다.

혼자만의 공감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웹 서핑 속 글들을 읽으며
혼자 웃고, 혼자 울고, 가슴 저릿하게 공감했다.

그 글들을
나와 같은 시대를 건너온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오래된 친구에게,
흘러간 인연에게,
‘나 아직 여기 있다’는 작은 신호라도 보내고 싶었다.

문자 한 통, 전화 없는 하루.
도서관도, 산도, 지하철도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깊은 고요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아내의 눈빛이
내 마음을 가장 깊게 흔들어놓았다.

가끔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듯
빈 화면에 조용한 울음을 쏟아내던 밤도 있었다.

일요일, 별장에서

어느 일요일,
아내가 양평 별장에 가자고 했다.
며칠간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나를
측은히 여긴 마음이었을까.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
그날따라 이상하게 따뜻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졸졸 흐르는 개울물.
멀리서 들리는 꿩 울음.
모두 새롭고, 마음 한편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잠시,
그냥 이대로 멈춰 서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대학생 아들의 메모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 당신은 대접만 바라십니다.
그 대접받을 행동을
보여준 적 있으십니까?”

숨이 멎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이
도망칠 곳 없이 나를 붙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을.

에필로그:

지나간 울음이 남긴 힘

돌아보면,
그때의 고요한 울음은
나를 부끄럽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끝내 다시 걸어가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던 힘이었다.

그 어둠이 있었기에
지금의 빛을
조금 더 오래 응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날들 속에서
소리 없이 울던 나는
여전히 내 안에서 작은 숨처럼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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