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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랄맘 Oct 31. 2023

" 우리 형아 이빨 요정 오세요."

 


오늘 저녁은 미역국,스팸, 오징어채볶음, 양상추다. 불린 미역을 들기름일까? 참기름일까? 잡히는 대로 반 숟갈 냄비에 두르고, 진간장 한 숟갈을 섞어 막 볶다가, 찰랑찰랑 물 한가득 부어 국간장, 액젓, 마늘 한 숟가락으로 팔팔팔.

 멧돼지 병원 19년차 간호사는 그만 때려치고, 엄마만 하기로 했더니 미역국 끓이는 것도 세상 만만해졌다.  야들야들하게 구워진 스팸 한 장과 잘근잘근 씹어 먹기 좋은 오징어채, 야채도 한 입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탈수기에서 갓 나와 찢어진 양상추가 맡아줬다. 결과는 싹쓸이다. 별것도 없이 밥 잘 먹어 준 아이들에게  

  “ 우리 애기들 오늘도 잘 먹어줘서 고마워~~~!  “ 했더니

  “ 잘~ 먹었습~니~다! “ 노래하며 식판을 가져다 준다.


 만능 식탁에서 한 삼십분 공부 습관 연습 중인 파랑이가 흔들리는 이빨이 자꾸 거슬린다며 내일 치과에 가잔다. 이갈이 3년차지만 실로다가 안 아프게 빼 주겠다는 엄마를 여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

  “ 파랑이가 한번 흔들어봐봐. 엄마 보기만 할게. “

  “ 아니, 아니, 아니, “

  손 하나 못 대게 해서 도대체 얼마나 흔들리나 알 수가 없다.

  “ 어? 잘하면 빠지겠는데? 치실 갖고와. 치실. 치실이면 돼. 진짜. “

  파랑이를 앉혔다.

 옆에서 다섯 살인 노랑이는 그림도 그리고 조용한가 싶더니 가위를 들고 오리는게 삑싸리가 나나보다.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 채로 들고 오리려니 테두리를 맞추어 그게 잘 오려지냐 말이다. 한 장을 쭉 찢어서 모양대로 이쁘게 오리라는 엄마의 제안에

  “ 아니, 아니, “  

 아니란다.  이건 노랑이가 부글부글 폭발하기 60초 전 징후다.

  “ 형아 지금 이빨 빼야돼. 저 베란다 가서 이빨 요정 오세요~ 해줘. 얼른~ “

엄마의 다급한 한마디에 왠지 모를 신기한 일이 기대가 되었던지 눈물 좀 닦고 부르겠단다.


묶었다. 치실로. 살살 묶었다. 아이는 안 아프게 뽑아 주겠다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 벌리고 있다.

  “ 빼 때 얘기 해 더. 아아찌? “

 아이와 함께 보던 치과의사 드소토에 나오는 그 여우 발음으로 뺄 때 얘기 해 달란다.

  “ 그럼. 그럼. 걱정마. 지금 살살 실만 묶고만 있어. “

 베란다에 간 노랑이는

 “ 이빨 요정 오세요. 형아 이빨 가져가세요~~ “

 거실까지 다 들리는 목소리로 이빨 요정을 부른다.

 “ 엄마, 나 이빨 요정 부르고 왔어. “

 “ 응, 잘했어. 고마워. 옆에 와 앉아 형아 손 꼭 잡아줘. 알았지? 자자자…… “  

 

뭔가 다급해 보이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 상황은 제 일이 아니어서일꺼다. 형아 옆에 앉더니 형아 손을 꼭 잡고 제 앞으로 가져온다.

 “ 헝아, 헝아, 내가 헝아 손 꼭 잡아 줄께. “

“ 자.자. 준비됐지? 쓰리, 투, 원, 고, 슛~! “

 갑자기 쌩뚱맞게 쓰리 투 원 고 슛을 외쳤다.베이블레이드 구령에 맞추어 파랑님 머리를 한대 퍽. 실을 잡아 당겼다.

“ 잉? “

“ 라와써? “

 파랑이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묻는다. 아프진 않았나보다. 살짝 잇몸에 피가 고이는게 이빨은 그대로다.

 “ 에고, 안 빠졌네. 뭐야? “

 “ 앙으… 앙흐… “

 다물지도 못한 입으로 징징댄다.

“ 아 잠깐.잠깐. 휴지 줘봐. 휴지. “

  준비해 놓은 휴지로 이빨을 감싸고 슬쩍 했더니 쑥 빠진다.  

“ 짜잔. 따~~~~다다다~ 따~다. 다~~ 다다다~ 다~~~~다. “

엄마의 위풍당당 행진곡 비지엠과 함께 파랑이와 뽑힌 이빨 한 컷을 남기고 파랑님의 인터뷰까지 마쳤다.


 지금 내 눈 앞의 이 장면은 35년 전쯤 하늘나라 선녀님이 오빠 이빨을 뽑아 주시던 딱 그 때 그 모습이다. 이마를 뒤로 툭 미는 동시에 이를 감싼 실이 앞으로 당겨지면서 빠져나와야 하는건데, 오늘 이 그림은 좀 이상하다. 왜 위에서 머리를 툭 내려쳤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이빨은 툭 빠져나왔다.

 “ 어여. 퍽퍽 퍼 먹어. “

 하며 오빠의  머리를 백만번 쓰다듬어 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오빠에게 퍼붓다 퍼붓다 못해 넘쳐 흐른 사랑 한 방울을 더 악착같이 모으려 했었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되고 보니, 전업 맘으로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내는 요새 조금 알 것 같다. 할머니가 오빠에게 베푼 사랑이 그 땐 그저 미움과 질투였지만 지금은 두 아이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아련한 기억이 되어 주는 것 같아 감사하다. 오늘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두 아이에게 받은 보물 같은 오늘을 주워 담았다.

 너희 둘 언제까지 사랑스러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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