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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랄맘 Jan 31. 2024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다섯 글자

두 번째, 미라클베개

매일 밤 아이 둘을 양쪽에 끼고 눕는다.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기 전 클래식 이야기 한 편 큐알코드를 찍고 불을 끈다. ( 오늘은 모차르트의 장난감 교향곡을 들었다. )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꺼다.


미라클모닝은 못하지만 미라클베개 어길 일은 없다. 미라클베개는 파랑이가 누워 낮잠을 자기 시작했던 6개월부터 시작되었고,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 복직 후 이브닝 퇴근 했을 때 파랑이가 계속 자거나,나이트 땐 빼겠다. )

초2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는 파랑이는 소시절 카봇, 또봇, 폴리, 파자마삼총사, 마샤와 곰, 도라에몽, 호기심딱지, 페파피그, 코코몽. 타요. 이것 말고도 열 개도 더 되는 시리즈를 다 꿰뚫어 봤었다. 이 아이가 건강한 것도 고맙지만, 온갖 TV 다 본 아이가 마음까지 건강하게 자라주니 이건 다 미라클베개 덕분이 아니었을까.


꼬물꼬물 팔 다리 버둥 대며 모빌 보는 그때까진 노래를 불러 줬다. 메밀 베개 베고 누운 아이, 팔 베개 베고 누운 나는 서로 마주 보았고, 아이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아기염소, 하늘나라동화, 섬마을, 바둑이, 이슬비. 입이 기억해 내는 몇 개 안 되는 동요를 부르고, 부르다가, 함께 잠이 들었다. 아.. 쥐가 난 듯 한 쪽 팔 저린게 풀리면 조용히 일어나 허기를 채웠었다. 고약한 가족인심에 미움 원망 분해서 밤잠 못 이루던 그 사연을 털어놓으며, “ 우리 함께 힘내자. 파랑이가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엄마 힘 낼께. ” 했던 게 9년 전 여름이다. 산후조리가 뭔지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고, 미친 자신감과 무식한 용감함의 대가는 그로부터 2년 6개월 사시사철 시린 무릎팍과 훵한 뼈속처럼 훵한 마음뿐이었다는. 그래도 참 다행인 건, 건강하게 태어나 준 아이에게 고마웠고, 그래도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날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 하늘이 도왔다.


아이가 옹알, 옹알 말을 하고 “ 테리 아파요. 틀어줘. ” 이런다. 그날부터 함께 본 티비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레벨업이 되었다.

 “ 그때 테리가 주유소에서 그랬잖아. 기름 좀 잔뜩 넣어줘. 그런데 테리가 꼬불꼬불 길을 가는데 브레이크가 안 멈춰서 어~어~어~ 절벽에서 떨어질 뻔했잖아. ~ ”

“ 응. 응. 응. ”

“ 아기 봉봉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어~어~! 어~! 혼자 남게 됐었잖아. 그때 타요가 나타나서… ”

“ 응. 응. 응. ”

 스르르 잠이 드는 파랑이였다. 엄마의 베갯머리 이야기로 아이는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미라클베개 덕분이었다.


복직을 하고, 책을 읽혀야 한다는 육아서를 보게 되었다. < 다섯 살 뇌가 평생을 좌우한다> < 아이는 엄마의 99%의 노력으로 … >  두 권의 책이 내 눈을 띄워 주었다. 쿠팡에서 산 자동차 시리즈 보드 북 열 권이 전부였던 나는  부랴부랴  <달님 안녕 >부터 시작했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색깔 목소리로  손가락으로 달님을 가리키며,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 내가 원래 이런 걸 잘하는구나. 나의 모습을 재발견하니 좋았다. ) 서서히 떠 오르는 달님. “ 어? 어? 달님이 어디 갔지? ” 아~ 구름 아저씨가 달님한테 할 이야기가 있었구나! ” “ 어떤 이야기했을까? ” 파랑이의 첫 번째 인생 그림책이 되어 준 ” 잘 자요 달님 “에게

오늘에서야 “ 고마워요 달님. ”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었다. 읽는 책마다 잘 들어준 파랑이. < 파란개 >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 < 우리는 친구 > < 까만 크레파스 시리즈 >  알라딘에서 이거다 하는 그림책은 박스채로 주문했고, 다 읽어줬다. 잠들기 전 그림책을 퍼부었다.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재미있다고 하면서. 이 모든 것은 미라클베개 덕분이었다.


항생제 먹고 토 한 날은 “ 엄마, 책 읽어줘. ”

열이 나 녹두죽 먹고 누운 날도 “ 엄마, 책 읽어줘. ”

함께 누워 엄마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 듣고 한숨 자고 나면 아픈 게 낫는다는 마법을 믿는 아이로 자랐다.


2024년 1월 15일부터 피노키오를 읽었다. 읽어주다가, 파랑이가 몇 쪽 읽다가 그랬다. 어젯밤 마지막 책장을 덮었고, 작가의 말까지 읽었는데 다시 또 읽자고 한다. 그리고 우린 열한 시가 다 된 시간 짜파게티 야식으로 책거리를 했다. 파랑이의 첫 번째 고전 문학 책이 되어 준 < 피노키오>에게 “ 고마워요, 피노키오. ”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읽는 동안 이야기의 흐름을 잘 따라와 주었고, 중간중간 퀴즈처럼 던지는 물음에도 정답 같은 이야기를 내놓으며 ,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며 재미를 느끼며 들을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음이 감사하다.


읽기만 하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한글 실력 엄마가 열 살 아이에게 고전 문학책 한 권을 읽어 줌으로써 내게도 첫 고전문학 완독이라는 웃픈 사실이 창피하지 않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만화 삼국지에 이어, 줄글 삼국지 1권을 읽어내며 책의 내용을 전하는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것은 나에게 기적과도 같다. 아무 공로 없는 내게 넘치는 선물과도 같다.


그것은 <미라클베개> 덕분이다.

“ 맘마, 잘 자. 좋은 꿈 꿔. 사랑해. “  말하더니 금세 잠이 드는 아이와, 이 책 너무 짧다고 애기 책이라고 <달님 안녕> 을 내려 놓는 그의 동생에게 물려주고 싶은 다섯 글자가 있다면 바로  <미라클베개 > .

잠들기 전 베개 타임은, 기적을 자꾸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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