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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군 Sep 21. 2023

급류

가끔 글을 써보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를 그냥 스치듯 보내버리게 될 것 같아요. 그럼 남는 게 무엇일까요? 매 순간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제 뭘 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저희 극단에서는 인형극도 합니다. 몇 년간 바쁘게 달려온 인형들은 팔도 다리도 성한 곳이 없어 인형작가님께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때 작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삶이 너무 바쁘면 퀄리티가 떨어진다'


사람도 인형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면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머리를 자르러 갈 시간이 없어 새치와 함께 머리는 더벅이고, 옷은 생각하기도 귀찮아 그냥 계절에 맞는 두께감을 가진 검은색만 입고 다닙니다. 그나마 운동은 열심히 했것만 그 덕에 기브스, 뼈와 관절 영양제 그리고 진단서만 바닥에 뒹굴고 있네요.

 

지인들에게 전 굉장히 느긋하고 평안하고 여유로운 사람처럼 비치나 봅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요새는 마음이 조금 불안 불안해요.

경험의 기준을 어디냐에 두는지에 따라 다르고 경험이란 것 자체가 주관성을 띄고 있기에 누구의 경험의 깊이가 깊은지 얕은지 측량한 단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죠?

하지만 전 예상할 수 없는 풍파도 좀 맞아봤고요, 배우라는 직업은 경험이란 감투를 씌어 많은 걸 합리화시켜주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들은 나를 나름 침착하고 평안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을 수도, 아니 어쩌면 많은 걸 초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하고 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근데 그게 되나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내가 뭔가를 애써도 안 되는 건 안되고 또 되고 또 안되고 많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어요.

저는 오히려 열심히 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면 항상 다치고, 연기도 열심히 하려 하면 부자연스러워지고, 사랑은 열심히 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각설하고 전 이렇습니다. 그래서 초연한 태도로 물 흐르듯 살아 보려 했는데 요새는 급류를 탄 것 같네요. 후룸라이드가 높은 곳에서 뚜욱 하고 떨어지면 장기들이 밀려 올라가며 부웅 뜬 느낌이 드는데 그런 느낌으로 하루를 살고 있어요. 그래서 누가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야' 혹은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야'라고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지금 뭔가를 많이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걸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감사함과 불안함 이 양가감정이 공존하는데 지금은 불안함이 더 커요. 이 생각은 다음 주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입니다.


드라마 인간실격을 연출한 선배 박흥수 PD 님이 학교 다닐 때 특강을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자기화된 지식'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듣겠지만 모두 다르게 강의를 받아들이고 삶에 달리 적용시킬 것이라고. 다양한 경험들과 가르침들을 나의 것으로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과연 난 잘 적용시키고 내 것으로 만들고 있을까요? 어제가 다르고 또 오늘은 또 다릅니다.

어제는 자신감이 넘쳐 당당하게 걷다가도 오늘은 숨고 싶고 창피해서 땅만 보고 걸어요.


물 흐르듯 산다는 것은 편안함을 쫓는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할튼 전 급류를 타 있고, 정신없고, 가끔 이렇게 재미도 교훈도 없는 글을 써보려 합니다.


이 글을 보신다면 부디 제가 잘 흐를 수 있도록 응원하고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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