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당근

by oj

주방에 가구를 장만했다. 언니가 주방에 아일랜드 홈바를 배치한걸 보고 나도 사고 싶었지만 김치 냉장 때문에 놓을 자리가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김치 냉장고 둘 자리를 만드느라 고심 끝에 방법을 찾았다.

일 저지르기를 좋아하는 나 때문에 수습은 늘 남편 몫이었다.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위치를 바꾸고 나면 퇴근 후에 엉켜있는 코드와 남은 정리들을 다 해주니 믿고 일을 자주 저지른다. 뭐든 싫증을 잘 내는 나인 걸 알기에 싫은 내색 없이 뒷정리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자기를 싫증내지 않는 게 다행이라며 덧붙인다. 남편도 이런저런 변화가 싫지는 않아보인다.

이번에 아일랜드 수납장을 어디 두냐며 못 사게 할 줄 알았는데 흔쾌히 사라고 해서 주문을 했다. 가구가 오기 전에 자리를 비우고 정리를 하니 만만치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가스렌지와 압력밭솥이 있던 3단 장식장은 당근에 나눔하고 깊숙이에 있던 자잘한 물건들을 꺼내서 버릴 건 버리고 수납박스에 하나씩 정리하며 가구 오기를 기다렸다. 며칠 안 돼서 택배가 오고 조립이 끝나자 미리 정리한 정리함들을 넣으니 일이 쉽게 끝났다. 전보다 수납이 많이 되어 사용하기 편했다. 아일랜드 수납장은 식탁과도 색깔이 잘 맞아 분위기가 고급져보이고 깔끔했다. 중구난방 정신 없던 주방이 달라진 것을 보니 한결 기분 좋았다.

젊을 때는 침대와 화장대. 쇼파는 힘도 안 들이고 혼자 바꾸고 정리했지만 이젠 엄두도 못 낸다. 그래도 곳곳에 변화를 자주 주는 것을 여전히 좋아한다. 덕분에 대청소에 묵은 먼지까지 닦고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작더라도 나를 위한 선물은 가끔씩 필요하다. 가구를 바꾸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언니는 고급진 접시나 포크 세트 등 주방 도구들을 좋아한다. 친구는 옷과 가방을 한 친구는 악세사리를 유난히 좋아하고 한 지인은 신발을 좋아한다.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자기 보상을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

가족사진을 한 번 찍고 싶어 벼르다가 작년엔 마음 먹고 찍은 후에 벽에 걸어두었다. 스튜디오에서 화장에 머리까지 손질 받고 깔끔한 투피스에 세 남자는 턱시도를 멋있게 입고 가족 사진을 찍고나니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처럼 뿌듯했다. 리마인드 웨딩. 한복 등 여러 컨셉이 있었지만 세 남자 모두 턱시도를 선택했다. 예약은 벌써부터 해두고 다같이 시간을 맞추느라 밀리고 살을 좀 빼고 찍는다며 늦춰서 계속 날짜를 연기만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밀어부쳤는데 보기 좋게 가족 사진이 잘 나와 만족한다.

얼마 전엔 1년 모은 적금을 탔다. 수입에서 조금씩 적금을 들어 많지는 않지만 목돈을 탔다. 작년에도 똑같이 탄 적금으로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그동안 모으기에만 바빴지 쓸줄 몰랐다. 살림에 쓰기 바빴고 교육비도 만만치 않아 나에게 쓰는 건 아까웠고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면서 내겐 더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 생활하며 경제적으로 독립하니 여유가 생겼고 몇 년 전부터 마음을 바꾸어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다. 명품은 아니더라도 갖고 싶은 가방을 하나씩 사고 옷과 신발도 샀다. 나만을 위해 쓴 건 아니다. 주변에도 작게나마 마음을 쓰는 여유가 생기니 기뻤다. 받을 때도 나눌 때도 모두 행복이다. 남편 생일 선물도 기분좋게 고르는 중이다. 남편이 명퇴하면서 수입이 줄어 예전보단 아껴야 하고 조금 과하게 썼다 싶으면 그 달 카드값이 증명한다. 소비와 지출이 늘면 바로 실감지만 아깝지 않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며 좋은 카페를 가서 커피도 마시고 자연을 벗삼아 바람을 쐬며 여행 하면 재충전이 된다. 수고했으니 나를 위한 보상과 당근은 소소한 행복이며 고진감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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