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물들어가는 10월이다. 자연의 붓 터치에 붉고 노란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이는 날들, 늘 순환되는 계절이지만 자연의 변화는 매번 신비롭고 경이롭다. 가을이 조금씩 조금씩 일상에 스며들면 저절로 차분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선명한 자연의 색깔들로 채워지는 10월도 홍차가 잘 어울리는 시간이다.
10월 차회는 얼마 전 다녀온 실론티의 땅, 스리랑카를 여행에서 보고 맛본 실론 홍차로 차회를 열었다.
동양의 진주라 불리는 스리랑카는 인도 최남단에서 약 40Km의 해안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전 지역이 열대 기후이며 나라 모양도 인도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다. 티 투어를 목적으로 한
여행이다 보니 대부분의 일정은 다원과 티 팩토리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다원의 풍경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순한 눈빛과 친절도 기억에 남는다.
스리랑카는 일 년 내내 차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스리랑카에 생산되는 티는 1972년 실론에서 스리랑카로 국명을 바꾸었지만 티는 그대로 실론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실론티의 구체적인 명칭은 생산되는 도시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면 누와라엘리야 홍차, 우바 홍차, 캔디 홍차, 루후나 홍차 등
스리랑카 티의 중요한 특징은 차나무가 자라는 다원의 높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어느 높이에서 자란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것인지에 따라 품질과 향미가 아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차회에서는 실론티의 고지대, 중지대, 저지대에서 생산되는 차를 마셔보면서 지대별로 다른 향미를
비교도 하고 각각의 매력을 느껴볼까 한다.
누와라엘리야와 생강 쿠키
대표적 고지대 티 산지인 누와라엘리야는 “대지의 평원”이라는 이름의 의미라고 한다.
스리랑카 최고봉인 약 2,000m 높이에 위치해 있는데도 평원과 경사지, 산비탈과 산악 계곡들이 펼쳐져
있다. 덥고 습한 기후지만 2000m 고산지대라 시원한 공기, 적당한 강우량, 미스트 같은 안개가 자주 끼고 밤낮의 큰 온도 차이 등으로 품질 좋은 찻잎을 연중 수확이 가능한 곳이다. 특히 2~3월 사이에 최고 품질의 홍차가 생산된다.
페드로 다원 홍차와 페드로 다원
차회에서는 누와라엘리야 페드로 티 팩토리 방문 때 구입해온 LEAFY TEA PEKOE를 우렸다.
페드로 다원의 홍차는 산화를 약하게 하는 게 특징이다. 우린 홍차는 황금빛 수색에 상쾌한 풀 향이 치솟는지 다즐링인줄..실론티의 샴페인이라 할 만하네. 상쾌하고 치솟는 풀 향과 꽃 향이 어우러져 한 잔을
마시니 온몸의 감각이 다 깨어나는 듯하다.
깔끔하고도 세포가 다 살아나는 느낌의 차라니. 페드로 다원 홍차는 햇차도 맛있는데 1~2년쯤 두고 먹어도 새로운 향미가 나와 다른 맛을 낼 것 같다. 이 상쾌하고 깔끔한 홍차에 스리랑카 생강 쿠키를 곁들였다. 스리랑카에서 많이 생산되는 생강이 듬뿍 들어간 쿠키는 바싹하고도 알싸한 맛으로 차와 함께하니 입안이 즐겁다.
페드로 다원 홍차와 생강 쿠키
캔디와 병아리콩 후무스&가을채소찜
캔디는 콜롬보로 수도가 옮기기 전까지 스리랑카 고도로 오랫동안 수도였던 곳이자 불교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발 600~1200m에 있는데 산지로 둘러싸인 안정적인 지형과 공기가 시원하고 건조하여 차의
성장에 좋은 중지대에 있는 유일한 차 산지이다.
캔디 홍차를 우리면 짙은 오렌지빛 수색에 맛은 진하고 풀 바디감을 가지면서도 오미의 밸런스가 좋은 홍차이다. 우유와도 잘 어울렸다.
게리감마 다원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OP 등급 홍차를 우렸더니 은은한 꽃 향에 약한 꿀맛이 나면서도 부드럽고 깔끔하다. 다원에서 직접 구입한 차가 이렇게나 맛있고 신선한지 다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캔디차를 최고로 꼽기도 했다.
곁들인 병아리콩 후무스는 스리랑카에 여행 때 커리, 샐러드 등으로 요리한 병아리콩이 식탁에 많이 올려져 있었다. 병아리콩을 후무스로 만들면 실론티와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거기다 당근, 고구마, 호박, 브로콜리를 쪄서 후무스랑 같이 먹는다.
밸런스 좋은 캔디홍차와 부드러운 후무스를 곁들인 체철 채소찜으로 차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간다.
병아리콩 후무스를 곁들인 채소찜
루후나와 아보카도 김밥
루후나는 600m 이하 지역으로 대표적인 저지대 차 산지다. 해변을 따라 다채로운 기후와 산 구릉지와 일부 열대 우림에서도 차나무를 재배하고 있다. 루후나 홍차는 아주 강하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그래서 싱글로 잘 마시지 않았다.
다른 좋은 실론티 많은데 굳이 루후나까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다원이라 그런지 OP 등급의 홍차도 경쾌한 듯 과일향과 꽃 향이 가득했다. 이 발랄하고 개성 강한 루후나 홍차에는 스리랑카의 흔한 과일 아보카도를 담뿍 넣고 김밥을 말았다. 아보카도의 고소하고도 버터리한 식감이 잘 느껴지는 김밥에 진한 루후나 홍차가 함께하니 김밥 하나 먹으면 차가 당기고 차를 마시면 김밥에 또 젓가락이 간다고 한다.ㅎㅎ
평소에도 김밥을 먹을 때 실론티를 우려서 마시곤 했는데 역시나 진하고 풀 바디감이 선명한 실론티는
밥 차로 딱이다.
크림 얼그레이 밀크티와 크랜베리 스콘
실론티와 크림 얼그레이를 냉침 하여 만든 밀크티는 부드러움과 진한 실론티의 향미가 그대로 담겨있다.
싱글 실론티를 지대별로 다 마신 후라 이제쯤 달달한 밀크티로 분위기를 바꿔도 좋을 것 같다. 밀크티에는 크랜베리가 들어간 소보루 스콘을 곁들였다. 생크림으로 반죽하고 아몬드 가루로 만든 소보루를 듬뿍 올린 스콘의 부드러운 식감과 크림 얼그레이 밀크티 조화도 최고지.
크림 얼그레이 밀크티와 소보로 스콘
마무리 차로 딜마의 앨더플라워 with 시나몬 & 애플티를 우렸다.
향기로운 앨더플라워와 맵싸한 시나몬 향이 사과에 더해져 입안이 기분 좋은 상큼 달달함으로 가득했다.
매력적인 실론티와 곁들인 다식, 함께 한 사람들 덕분에 10월 차회도 가을 하늘만큼이나 풍요롭고 넉넉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실론티와 함께 한 10월 차회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