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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뉘 Dec 25. 2023

나는 왜 미국에 살고 있지? (1)

'나는 왜 미국에 살고 있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침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하다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의 따뜻한 손은 적어도 명확한 이유 하나는 있다고 말해주었다. 


12월 20일. 한국에 있지 않아 잃고 있는 것들이 부각되는 날 중 하나였다. 연말이 되니 그 이유들이 연속해서 보였다. 

Washington Square Park in NYC. 12/23/2023


초등학생 때부터 친한 20년 지기 친구의 임신소식을 단체톡을 통해 제일 늦게 전해 들었다. 너무 놀랐고 개인톡을 보냈지만 감정을 나누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번 여름만 해도 임신에 대해 같이 고민했기에 어떻게 된 것인지 그 뒷 배경이 궁금했다. 하지만 카톡으로는 어디까지가 캐묻는 게 아닌지 친구의 반응을 살피며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축하한다고 몸 잘 챙기라고 적당히 일반적인 얘기만 하고 마무리 지었다. 아쉬웠다. 


단체톡에서는 매년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맛있는 걸 나눠먹고 새벽 두 시까지 얘기하다가 의도치 않게 쥐까지 본 친구들끼리 관계의 돈독함이 느껴졌다. 말을 안 하던 남사친도 맛있는 걸 먹을 때 음식 사진을 보내고 있었다. 연말파티에 못 끼는 게 매년 아쉬워 올해에는 나도 선물을 보냈지만, 오히려 더 아웃사이더라고 느꼈다. 한 명당 하나씩 선물을 준비해 오면 무작위로 선물을 뽑아가는 식인데, 한 친구가 예상치 못하게 오지 못해 내 선물은 당일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을 괜히 선물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친구는 있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최근에 갔던 독서클럽에서는 브리트니스피어스와 내가 모르는 팝스타의 가십을 얘기했다. 이해하려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내가 빠져있는 이무진과 BTS의 군대 소식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이들도 그저 듣고 있을 게 뻔했다.


사랑하는 세 살 조카, 이모와 통화를 하는데 어제 내가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만난 지 3개월 지났을 뿐인데 말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이전에는 '네'라고 수줍게 대답만 하던 아기가 오늘은 키즈카페에서 뭘 했는지 존댓말을 써가며 신나서 얘기했다. 한국어로 조잘거리는 게 귀여워 웃음이 계속 나왔다.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내 아이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늘 하던 질문을 되물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 줄줄 떠올랐다. 주말마다 한국어 학교에 보내고, 1-2년 정도는 한국에서 아이와 사는 것. 한국어를 못 하는 남편과 그동안 떨어져 지낼 것, 나는 그동안 일의 공백기가 생기고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한 고민, 그렇게 한국어를 성공적으로 가르쳐도 우리가 한국어로 얘기할 때 남편이 느낄 소외감까지. 


미국에 살면서 치르는 값이 커 보였다. 


그럼 나는 왜 이곳에 살고 있지? 


존재만 생각해도 따뜻함이 느껴지고 웃음을 짓게 하는 남편은 그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그게 다일수는 없다. 사랑에도 슬럼프가 올 거고, 나만의 이유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저널리즘이 큰 이유였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면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미국 대학원에서 그 훈련을 받고 질 높은 기사를 추구하는 신문사에서 일을 하면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표한 대로 저널리스트는 되었지만 그 사기는 사그라들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내 삶을 포기해야 하는지, 그에 주어지는 대가는 어떠한지 알지 못했을 때의 사기 말이다. 


그럼 왜?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갈 여지도 두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현재 내가 선택한 삶의 터이기에 이 글을 핑계 삼아 그 답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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