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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뉘 Jan 21. 2024

나는 왜 미국에 살고 있지? (2)

굳이 미국에 살아야 할지는 지난여름부터 자주 생각했다. 그때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서 두 달 반 동안 쉬었는데 너무나도 편안했다. 보고 싶던 조카와 이모도 기차를 타면 두 시간도 안 되어서 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동네에 있는 독립영화관에서, 문구점에서, 음악학원에서,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나와 학창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을 만나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왜 미국이지? 계속 생각을 하다가 몇 년 전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미안한 사람들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



태어났기에 마지못해 살기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끼기에 계속 살고 싶다. 큰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작더라도 자주 행복하다고 느끼고 싶다. 이는 사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나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위와 같은 감정을 강렬하게 거의 매일 느꼈다. 인턴십을 뉴욕시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영상이라든지 정책이라든지 내가 질문을 던지면 신이 나서 파고들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때 그 세계를 구경하는 게 재밌었고 나도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 세계를 만들 생각에 자주 가슴이 설레었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르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마주하면 설레고 신이 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이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때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게 그저 재밌었다. 지금은 다양성을 가능하게 한 그 미국의 넓은 땅 때문에 끈끈한 친구관계를 오래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뉴욕에서는 공부하러 왔다가, 잠시 일하러 왔다가 떠나가는 유동인구가 많다.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도 캘리포니아, 텍사스, 일리노이, 중국, 독일 등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도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기에, 현재 이곳에서 내가 언제 살아있어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설레는지 생각해 보았다.

1. 사람과 커뮤니티: 상대와 정말 통한다고 느낄 때. 대부분의 경우, 관심사나 생각하는 주제가 비슷해서 그렇다. 상대방이 신나서 하는 얘기가 흥미롭고 더 그 사람의 세계를 알고 싶을 때. 어렵지 않게 상대방을 격주로 한 번은 만날 수 있을 만큼 서로가 소중하고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어떤 질문이든 마음껏 묻고 토론할 수 있을 때. 엉뚱한 질문을 해도 상대가 당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피력할 때.

2. 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이 편안할 때. 빛이 가득 들어오고, 조용하고, 빨래와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동네와 아파트에서 가고 싶은 이벤트를 개최할 때. 5년 후에는 이런 집을 구매하겠다고 남편과 계획을 세울 때.

3. 콘텐츠: 원하는 콘텐츠가 영어로만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어로 검색했을 때 찾을 수 없었던 영상을 영어로 검색했을 때는 찾을 수 있고 이 덕분에 그 영상을 즐길 수 있을 때. 반대로, 읽고 싶은 한국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을 때.

4. 음악: 맨해튼에 있는 재즈바를 가보면 일반인들이 즉흥연주를 하기도 한다. 이들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다른 연주자들과 보여주면 관중에 있는 나는 희열을 느낀다. 이런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공연 후 연주자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최근 밴드에 들어갔는데 남은 생애에 계속 음악을 파고들어 나도 언젠가는 즉흥연주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설렌다.

5. 자연: 아직 푹 빠져본 적은 없지만, 뉴저지 사람들이 캠핑과 하이킹을 다니는 걸 보면 도파민이 분출된다.

6. 음식: 먹고 싶은 한국, 다른 아시안 음식, 가끔은 새로운 나라 음식이 가까이에 넘쳐날 때. 그 나라 친구와 이를 공유할 수 있을 때.


이 중 집, 음악, 자연, 음식은 모두 괜찮은 직업을 가졌을 때 향유할 수 있다. 이를 제공하는 대도시 근교에 살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고, 동시에 내 시간도 가질 수 있는 직업 말이다. 추구하는 직업이 있고,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는 직업문화를 고려해 보면 계속해서 이들을 추구할 수 있다. 5년 내에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갖고 주중에도 자주 설렌다면 계속 미국에 살고 싶을 것이다.

관건은 사람과 커뮤니티이다. 한국에는 함께 자랐고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기에 친구들과 접점을 찾기가 훨씬 쉽다. 하지만 동시에 학교라든지 직장이라든지 같은 공동체에 속했던 게 아니면 새로운 연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미국에서도 직장인에게 이는 마찬가지이지만, 비교적 새로운 만남에 개방적인 편이다. 가령, 올해만 해도 남편과 나는 아파트에서 보드게임 + 독서 정기모임을 만들었고, 매주 한 번 적어도 여섯 시간을 보내는 밴드에 가입했다. 친구를 사귀는 모바일 앱으로 새로운 절친커플도 사귀었다. 아직 한국의 인연만큼 각별하거나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 시작이 내게 희망을 심어준다. 5년 내에 끈끈한 우정,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면 앞으로도 미국에 살아갈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그렇게, 떨어져 살고 싶지 않은 남편과 내게 미국에서 나의 커뮤니티를 찾는 것이 올해의 공동 목표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12월이 되면 한국의 인연을 그리워할 게 뻔하다. 그래서 올해 12월에는 한국에 가려한다. 적어도 지금의 희망이 현실이 될 때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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