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 이야기
나는? 나는!
행복하게, ‘비장애자녀와 함께 살아가기’ 강연에 참석했다. 장애인 가족과 관련된 강연은 꽤 오랜만이라 궁금했다. 더구나 장애인 형제 즉 장애인 가족이지만 개인인 비장애형제의 고충이 강연의 주제라니.
강연자는 실제 장애인을 동생으로 둔 당사자이고 자신의 목소리는 물론 비장애형제 모임을 이끌며 그들의 목소리를 책으로 엮어내기도 한 장본인이었다.
참석 전 강연자와 회원이 공동 집필한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책을 먼저 읽었다. 글 속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강연자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너희들 마음은 그렇게 무너져 있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구나. 책을 읽는 내내 난 한없이 아팠다.
강연자는 담담했다. 조곤조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듣는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어요. 공부 잘하고 장애인 동생을 잘 보살피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그런 아이로 살아왔어요. 그러면 나의 존재를 부모님이 알아줄 것 같았어요. 장애인 형제 뒤에서 사랑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 내 아이와 너무도 닮은, 어쩌면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말을 하는 강연자의 표정과 말투에 난 무너졌다.
내 아이도 어쩌면 그런 마음으로 부모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자랐겠구나 싶어 한없이 아팠다. 오죽하면 어린아이 그림에서 섬에 홀로 남아 배를 타고 떠나는 엄마 아빠와 동생의 모습을 그렸을까. 왜 그런 그림을 그렸냐는 질문에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는 내 아이. 그 어리디어리고 슬프디슬픈 마음. 난 그 마음을 다독여주긴 했던 걸까. 따뜻한 손길과 눈길로 아이를 안아주긴 했던 걸까.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난 여전히 어릴 적 아이의 몸짓 안에 담겨있던 그 속마음이 막연하다. 어딘가 그늘진, 말을 참는 그 입매, 풀죽은 어깨, 어쩌다 한 번씩 터지던 동생을 향한 외마디에 담겨있던 분노. 그리고 죄책감으로 쩔쩔매던 그 눈빛. 흔들리던 눈빛. 아마 속으로 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난 몰랐었나 보다. 어쩌면 알고도 힘에 겨워 모르는 척 외면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시절 아이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던 내 계획들은 많고 많았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프로그램을 짜서 아이와 친구들을 과학관에 때론 체험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 아이들 속에 장애인인 동생을 동행시켰는데 난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뿐인가. 성당에서 진행하는 장애아 주일학교 야외 활동 때도 큰애를 동행시켰다.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도 끝내 따라나서곤 하던 아이. 사진마다 찍혀있는 그 힘들어하던 표정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어디서나 사고만 치는 동생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 그런 자리가 버거웠으리라는 걸.
그래서 그랬던가. 아이는 사춘기도 없이 그저 말수가 적어진 게 전부인 채로 지나갔고 늘 착한 모습만 보여 착한아이증후군에 걸렸다며 농담 반 진담 반 걱정 아닌 걱정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장애아 주일학교 캠프 봉사자로 참여하더니 지금은 아예 교사로 주일마다 나가서 봉사하고 있다.
그 마음 안엔 어떤 아픔이 들어있을까. 강연자의 절절한 경험담을 들으며 내 아이의 속마음을 가늠해 보았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알던 그 착한 아이가 아닌, 슬픔과 분노가 가득 찬 아이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 가슴이 저렸다. 내 아이도 강연자처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그냥 속으로 삭여내며 성장했던 건가 싶으니 어린애였던 그 시절 그 아이를 그저 꼭 안아주고만 싶었다. 엄마가 너무 미안했다고. 그땐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러나 네가 있어 살아낼 수 있었다고.
다 네 덕분이야, 이 말을 전하고 싶지만, 그저 늦은 밤 내내 그 시절의 아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는 게 전부였다. 고단한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던, 홀로 자신의 아픔을 감당했을 그 어린아이의 미소를 사진으로나마 마주 보며 웃는다. 얘야 지금은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