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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의근원 Sep 26. 2023

조미유가 짬뽕국물에 빠진 날

조리예

2학기 중간고사 첫날 국어, 과학 점수가 그리 나쁘지 않고

과학 문제 중 오류인 것 같은 문제로 내일 수학 영어보다

오류를 어떻게든 밝히기 위해 검색하고 있는 아들


요즘은 좋다

시험기간 학교에서 간단식으로 점심도 주고

워킹맘들 덕분에(?) 집에서 아들 오기만을 기다리는 전업맘인 나까지 왠지 혜택을 누리는 기분인 날


학원 가기 전

뭔가 먹여서 보내야 될 것 같아

"학원 가기 전에 뭐 해줄까?

1초의 망설임 없이

"라면 라면 라면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있어"

시험기간엔 당연히 라면 시험기간 아니어도 라면 학원 가기 전 시간 없다는 핑계로 라면

그렇게 라면을 많이 먹더니 얼굴에 여드름에 트러블 따위는 전혀 관심 없는 모솔인 아들


아들이랑 라면 같이 먹기로 하고

일단 가볍고 빨리 끓는 냄비에 물 올려놓고 라면서랍을 열어보니

오늘 추석 장보기 하면서 처음 장바구니에 담아본 할인하는 짬뽕라면 2 봉지를 꺼냈다

짬뽕라면이 거기서 거기지 조리방법 따위는 무시해

늘 조리방법 조리예는 무시하는 주부 9단의 결혼 18년 차

물이 팔팔 끓기 전에 수프먼저 넣고 온도를 최대한 끓어올려서 면을 넣으면

아주 꼬들꼬들한 면발의 소유자 짬뽕라면이 될 거야를 상상하며

라면봉지 안을 들여다보니 어 후레이크가 있군

더 늦기 전에 넣어야 해 이건 소중한 건더기 담당이니깐

별도로 넣을 예정인 콩나물 한 줌보다 더 소중하지


드디어 수프 후레이크 콩나물 한 줌까지 넣은 짬뽕국물이 팔팔 끓는다

면 넣고 끓어오를 때 찬물로 온도를 급 내려줄 냉수 한잔까지 준비하고

라면 면발 투척 봉지째 쏟아부어야 제맛이지

팔팔 끓고 있는 짬뽕국물에 봉지째 면발을 쏟아붓는다

앗 그런데 이것은 면발과 함께 떨어지는 투명비닐 안에 들어있는 조. 미. 유도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황하지 않고 면발 풀어줄 용도로 준비한 집게로 쏙쏙 건졌지만

순간 웃긴 건 나뿐인 거지 ㅎㅎ  아니 무슨 조미유가 그것도 투명한 비닐로 된 말랑말랑한 조미유가

짬뽕국물에 콩나물 위에 면발과 함께 떨어지다니 콩나물 덕분에 바닥으로 안 떨어져서 다행인 건지

나에게 조미유란 이런 존재다 짜파게티에 조미유만 소중하고 내가 알고 짐작 가능한 조미유다

라면의 종류가 어마어마한 요즘 나에게 설명서  따위는 필요 없고 물 량 따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내 입맛에 맞게 아들 라면도 끓이는 엄마라 물 많이 면만큼 건더기는 무조건 많이 넣기

동생과 자취할 때  언니는 한강에 배 띠우듯 물을 너무 많이  넣는다고ㅎㅎㅎ 냄비 안에 면발이 한강에 배 같다고ㅎㅎㅎ

그 건더기는 치즈 만두 계란 어묵은 기본이고 콩나물 파 팽이버섯 미역 양파 무 시금치

라면 종류에 따라서 건더기 재료도 많다


나의 생각 나의 고집 나의 레시피대로만 고집하다 보니 조미유 같은 향을 담당하는 재료는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설명서 한 번만 읽어 봤어도 조미유를 라면봉지 라면면발 옆에서 발견을 하고 꺼내놓았을 텐데

삶도 마찬가지 내 생각 내 고집 내 상황만 생각하고 내 맘대로 살다가는

조미유 같이 작은 것 아주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을 빠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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