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ㅣ 송경원 ㅣ 바다출판사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착한 글이 있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물론 잘 쓰고 못 쓰고를 내가 감히 어찌 판단할까. 착한 글은 읽다 보면 그 흐름이 너무 좋아 방금 읽은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든다. 맛있는 케이크를 아껴먹는 그런 느낌이다. 직전에도 영화 리뷰 책을 읽었건만, 이번에도 같은 맥락의 책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다행히도 책 전체에서 다루는 거의 모든 작품을 나 또한 관람했다. <봄날은 간다>에 대한 저자와의 의견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기생충>에 대한 저자의 의구심은 짐짓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씨네21' 편집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다는 걸 떠올려보면 무리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평론'이란 잣대로 노력해 만든 어느 작품에 누가 되거나 해를 끼치진 않을까 고민하고 염려하는 그의 자세에서 그 '착함'이란 것을 느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겐 많은 것을 어필하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의 만화 버전이 <엽기적인 그녀>라 잠깐 생각이 들었고, 조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나 또한 그때 잠시 잠깐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았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1초도 고민 없이 그것은 바로 '이야기'다. 화려한 CG, 유명한 배우, 트로피가 즐비한 감독, 몇 년간에 걸친 촬영 기간은 사실 아무 필요 없다.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영화가 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이 점점 미약해진다. 이야기는 한편으론 서사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사의 힘은 이야기의 힘이 되고, 그 이야기는 100분 안팎의 한 작품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밀알이 된다.
저자가 중요시 여기는 그 서사의 힘은 책 속에서 언급되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일관된 방향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뜬금없는 설정 또한 그 서사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난 감히 말하고 싶다. 영화란 말 그대로 시청각을 사로잡는 공감각의 영상매체로 완결성을 지닌 종합 예술이 아니던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한 방향의 이정표만 갖고 가기에는 영화가 지닌 힘이 너무 강렬하다.
얼마 전 지인과 반나절이 넘는 톡을 주고받으면서 다시 한번 기성전 영화로 매듭을 짓는 상황이 펼쳐졌다. 같은 감독의 데뷔작이자 두 번째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인생 영화기도 하지만 닮은 듯 너무나도 다른 두 작품에 담겨있는 '사랑'이란 힘은 앞으로도 내가 거듭해가며 풀어나갈 실타래와도 같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미래를 목전에 두고 액자에 다림이 사진을 담아 사진관 한 편에 얹어 놓는 정원이의 마음. 결국 소화기는 사랑이라고, 누구나 사용법을 알지만 사용해 본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소화기의 사용법을 친절하게 상우에게 설명하는 은수의 마음.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나자, 내 안에 잠들고 있던 작품들이 사랑들이 이야기들이 온 새 내 마음 전체에 얼룩으로 번져버렸다. 고마운 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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