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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29. 2024

사과가 비싸지면 안 되는 이유

역사를 바꾼 사과인데



사과만큼 많은 스토리를 가지 과일이 또 있을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던 때에는 영락없이 사과가 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 


인간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이 "딱 한 가지만" 금지한 것을 인간은 결국 범하고 말았다. 

금지한 한 가지는 "동산 위의 과실(선악과)"만은 먹지 말라 한 것인데, 그 과실을 먹어 버린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 과실이 '사과'라는 명시는 없지만, 선악과를 사과로 여기게  이유는 라틴어 번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라틴어에서 '악'을 뜻하는 용어는 "Malum"이라는 것이데, 이 용어에는 "악함"뿐만 아니라 "사과"의 의미가 함께 있기 때문에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선악과를 자연스럽게 "사과"라 여기게 되었다.


성경에는 그 과실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이라고 묘사한다.



사과를 보면서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더 맛있고 탐스러운 과실이 천국에는 넘쳐나고 있었겠지만, 유독 이 과실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


그것은 실제 과실의 맛이 궁금해서라기보다 '금지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

'유혹의 상황'에 나약해 지는 인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 과실만 아니라면,  다른 모든 것을 먹을수도, 가질 수도 있었음에도 최초의 인간은 이 과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과실을 먹은 직후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벗은 몸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그를 계기로 인간은 선함과 악함을 경계를 넘나드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만다. 사과의 탐스러움에는 그런 유혹과 인간의 원죄가 깃들여 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세기 3: 4-7)
<아담과 이브>, 루카스 카라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의 사과


'실제로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그 순간  "아하!  만유인력!"라며 위대한 발견한 것이 맞을까?'


나는 뉴턴의 사과를 떠올릴 때마다 늘 이런 의심을 했지만, 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그대로 믿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또 그 사실 여부가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하며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기에 더 이상은 생각지 않았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케 한 사과 덕분에 종교에 묻혀있던 인간의 이성이 별처럼 빛을 내기 시작했고, 과학의 시대가 열린 것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세잔의 사과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런데 세잔의 사과가 "세상을 바꾼 3개의 사과"라고?

왜?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세잔의 사과가 피카소의 탄생, 이후 입체파와 야수파에 이어 현대 미술의 새로운 사조를 연 불꽃이었다고 말하면 어떨까?


세잔은 사과를 미친 듯이 그렸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세잔


세잔 당시 주요 사조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하는 인상주의가 주를 이루던 시기였다.  그런데 세잔은 반대로 변화하는 모습이 아닌 변하지 않는 것을 쫓았다. 모든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고 확신했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 정물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그 본질을 끝까지 추적하며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를 위해 선택한 정물이 사과였던 것이다. 사과는 상대적으로 가장 늦게 썩는 과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신념을 담아 그는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라는 말은 서슴지 않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원근법은 가짜다"라는 파격적인 선언 또한 우리가 사물을 '고정'된 시각으로 보아서는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실제 그의 사과 그림을 보면, 한 정물 안에 여러 시점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불안한 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피카소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거장들에게서 볼 수 있는 불안한 긴장감, 낯선 시선이 주는 매력과 닮아있지 않는가?





애플의 한 입 배어문 사과


애플이 아니다, 스티븐 잡스의 한 입 배어문 사과가 더 맞겠다.

왜 그는 사과를, 그것도 한 입 배어문 사과를 로고로 사용했을까?



여기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사과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것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엘런 튜링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다. 


엘런 튜링 교수는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았던 시절 이를 비관하며 독사과를 베어 먹고 사망하게 되는데, 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그를 존경해 왔던 스티븐 잡스가 이를 기리며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애플의 로고로 사용하게 되었다는 견해이다.


이 외에도 애플의 경쟁사였던 IBM이 애플을 "썩은 사과"로 비하하자, 이에 맞서 "썩은 곳을 도려낸 사과"로 맞서는 과정에서 이것이 애플의 로고로 정착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역사를 바꾼 3개의 사과', 혹은 4개의 사과라는 거창한 의미부여 말고도  

많은 스토리가 사과와 함께 등장한다.


스피노자의 사과

윌리엄텔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사과 같은 내 얼굴 예쁘기도 하지요~~ 까지.






사과가 이렇게 많은 사연에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고 가까이 있는 과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흔히 만나고 먹을 수 있던 사과가 비싸고 멀리 느껴지는 요즘이 참 아쉽기도 하다. 


지금처럼 사과가 값비싼 과일이었다면...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뒹구는 사과를 쉽게 볼 수나 있었을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하필 사과라는 과일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세잔이 그렇게 계속 사과를 사서 미친 듯이 그려낼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가까이, 냉장고 안에서 얼마든지 가볍게 아삭아삭 즐길 수 있었기에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사과를 둘러싸고 넘쳐날 수 있었을 것인데...


사과가 값비싼 과일이 되어 쉽게 접하지 못할수록, 

우리가 사과 덕분에 즐길 수 있는 풍성한 이야기도 줄어들지는 않을까?

 

"사과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진짜 사과를 살며시 건네는 일이 

센스 있고 유쾌한 이벤트가 아니라, 

정말 값진 선물을 주고받는 진지한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과가 비싸지는 건 정말 큰 일이다.

앞으로 우리가 겪게될 역사의 대변혁에 또다시 사과가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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