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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리 Sep 19. 2023

[오늘#1] 매일 쓰는 글, 매일 쓰는 일

- 평범한 직장인의 김치같은 오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글만 쓰지는 않고, 글을 쓰기 위해 글의 재료를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을 병행한다. 어쩌면 글쓰기의 재료를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재료'를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내 직업이 고고학자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학자'라고 하기에는 발표한 논문도 적고 그럴싸한 글도 많이 쓰지 못했지만, 어찌됐든 나는 땅속에서 옛것을 찾아내고 찾아낸 유물과 유적을 정리하며 이렇게 정리된 유적과 유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보고서나 논문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한다. 



나는 매일 이런 '류'의 글을 쓴다.

  내가 직접 조사하고 발굴한 유적이나 유물의 갯수를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어찌됐든 매일같이 현장을 나가서 유적과 유물을 발견하고, 발견한 유적과 유물을 정리하며, 정리된 데이터를 기초로 글을 써서 세상에 유적과 유물을 알리는 일을 20년 가까이 하고 있다. 내가 직접 글을 쓰고 가편집을 하여 세상에 선보인 보고서만 수백권에 이르고, 그 보고서를 쓰는 과정에서 워드프로그램에 써 넣은 활자수는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일 거다.



  이렇게 고고학의 많은 글을 쓰면서, 자연스레 내 문체는 학계에서 원하는, 또는 학계에 어울리는 문체가 되었다.(심지어 어투까지도...) 어디가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하다보면, 교육계에 있느냐, 학교에서 근무하냐 등등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많이 듣곤 한다. 내가 사는 이 세계에 발을 들인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다른사람이 쓴 '다른 글'을 보게 되었다. 말 그대로 다른 글이었다. 고고학을 업으로 삼아오면서 다른 사람이 쓴 보고서나 논문은 수도 없이 많이 읽어왔지만, 그 글들은 모두 '비슷한 글', 또는 '같은 글'이었던 것이다. 아예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이 쓴 '다른 글'.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도 다른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나도 다른 글을 써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써보자!'
'나도 매일 글을 쓰던 사람인데, 뭐 어렵겠어?'


  마음먹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아주 가까우면서도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내가 쓰는 '다른 글'은 매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어렵다기 보다는 매우 어색했다가 맞을 것 같다. 글을 쓰는 필자가 만족하고 글을 읽는 독자가 흥미를 갖는 그런 글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서, 내 글은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다. 독자의 흥미는 사실 차치하더라도(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글을 쓰지 말라는 어느 작가님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난다...) 내가 쓰는 내 글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매일 글을 써 왔지만, 사실 난 매일 '일'을 쓴 것이었다...



  처음 먹는 한 숟가락의 밥으로 어찌 배가 부를 수 있으랴. 내 글은 이제 시작이다. 매일 일을 쓰는 것이 아닌, 매일 '다른 글'을 써 보겠다.



나의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됩니다.
오늘을 사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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