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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리 Sep 22. 2023

[오늘#5] 벨소리

평범한 직장인의 김치같은 오늘#


  휴대폰 벨소리는 다양하다. 기기를 처음 샀을 때 부터 내장되어 있는 벨소리도 있는가 하면, 가수의 음원을 다운받아 편집하여 나만의 벨소리를 만들 수도 있고, 내가 만들 수도 있다. 다른사람과 차별을 두어 나만의 개성있는 벨소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장되어 있는 이미 만들어진 벨소리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난 내장되어 있는 '기본 벨소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근 10년이 넘게 똑같았다. 중간에 기기를 바꿨어도 계속 똑같았다. 왜냐하면 난 아저씨니까.ㅎㅎㅎ


  특별한 나만의 벨소리로 설정하는게 귀찮기도 했고, 뭣보다 시끄럽거나 독특해서 전화가 왔을 때 다른사람의 이목을 끄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왠만하면 진동으로 해 놓을 정도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이유는 아마도 불편하지 않아서 일거다. 또 내가 하루의 1/3 이상을 머무르는 회사와, 그 나머지 시간을 머무르는 집에서는 나와 같은 벨소리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 


  기본 벨소리를 사용하는걸 평소에는 불편함을 못느끼는데, 어쩌다 한번씩 느낄때는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나들이를 나갈 때다. 정확히 얘기하면 아내와 우리딸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땡 때래래래랭~♬ 땡 때래래래랭~♬

아빠. 전화왔는데?

응? 그래? (부스럭부스럭) 아빠거 아닌데?

아이~ 뭐야~ 벨소리좀 바꿔~~

왜~ 아빠는 괜찮은데~

맨날 햇갈리잖아. 다른걸로 바꿔. 내가 바꿔줄까?



  식사 도중 나와 같은 벨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아내도 타박을 하고, 우리딸도 더 적극적이 되어서 휴대폰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들어보면 내 벨소리는 아니다. 나는 안다 내 벨소리를.


  멜로디와 음질이 같아도 나는 안다. 무엇이 내 벨소리고 아닌지를. 두 휴대폰을 나란히 옆에 두고 같은 벨소리를 울리게 한다면 햇갈릴테지만,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과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저곳의 벨소리는 어떤게 내 벨소리인지 구분하게 해준다. 어쩌다 한번씩 햇갈려 내 가방에 들어있는 휴대폰을 꺼내보는 적도 있지만, 그런일은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 난 안다.




  세상에서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쌍둥이라 해도 외모는 같아보일지언정 내면까지 같은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니까. 인간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고 하는데, 구성되어진 사회는 정책,정치,이념,경제적으로 같은 방향을 추구할지언정 각각의 구성원은 모두 다르다. 같은 면이 몇가지 있는 사람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건 말 그대로 몇가지이지, 개인을 구성하는 성격과 외모, 버릇과 행동은 수천, 수만가지로 되어있기에 결국은 다른 사람이다. 


'저사람의 생각은 내 생각과 비슷해.'
'저사람의 행동은 내가 해보고 싶은 거였어.'
'나도 저렇게 생각하고 행동해 봐야지!'

  생각과 행동을 모방하더라도, 결국에 그걸 하는 사람은 '나'다. 모방은 창의로 가는 길의 시작이라고들 말하지만,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니까. 모방을 해서 내가 하고싶었던 생각과 행동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처음 모방했던 대상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는다.




신라시대 석곽묘의 바닥을 그린 도면. 8년 전 그림이다.

  발굴된 유적을 그려내는 '도면실측'을 나에게 처음으로 가르쳐준건 학교 선배였다. 현장에서 갖은 모욕과 심지어 구타도 당하며 어렵게 배웠다.(옛날에는 다 이랬다...) 그 선배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었고, 나도 그 선배의 센스와 도면실력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배웠다. '저 선배만큼 잘 그릴거야.' 시간이 지나 도면분야에서만큼은 우리팀내에서 잘그리는 사람이 되었고, 그새 생긴 후배들에게도 내 노하우를 가르쳐 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도면 잘그리는 선배에게 배웠고, 내가 후배들에게 가르친 도면실측방법은 '나'의 노하우와 '선배'의 노하우가 접목된 것이었다. 


  5년전에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2명을 채용했다. 나이도 같았고 성별도 같았으며 한명은 대학원 수료, 다른 한명은 대학원 재학이었다. 차이점은 한사람은 포토샾과 일러스트 자격증이 있다는 거였고, 다른 한사람은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증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말단사원의 업무는 대게 도면제작인데, 포토샾과 일러스트가 있는 사원은 '도면제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는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새로 뽑힌 두 신입사원은 비록 팀은 달랐지만, 동기였기에 서로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며 한발짝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로 자격증이 없는 사원은 학생이었고, 자격증이 있는 사원은 선생이었다. 학생과 선생의 관계라고 해서 강압적이지 않았다. 배우려는 사람은 마음을 열었고, 가르치는 사람은 더 자세히 공부했다. 시간이 2년 정도 지났을까. 두 사원 모두 도면제작에 능숙해졌다. 그러나 둘은 달랐다. 도면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같아 기술 부분에서는 같았을진 모르지만, 완성된 도면의 어딘가가 달랐다. 잠깐 보면 거의 같은 도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달랐다. 포인트에 넣은 색이 빨간색이었지만 살짝 톤이 달랐고, 도면 안에 들어가는 범례나 기호도 같았지만 그 위치가 아주 살짝 달랐다. 도면이 완성되고 최종 컨펌에서 난 자격증이 없는 사원의 도면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도면제작 기술은 같았고, 어차피 완성되어 나올 도면의 내용도 같아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디테일에서 달랐다. 자세히 봐야 눈에 들어오는 디테일이 나의 선택을 결정했다. 각자의 장점이 미세하게 보이는 결과물이었지만, 프로젝트의 성격과 내 개인적인 취향도 반영되어 한 도면을 선택했을 뿐, 두 사원의 도면은 모두 훌륭했다.


  같은 날 입사한 두 신입사원. 업무를 한 물리적인 시간은 같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냐에 따라 둘은 달랐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일을 같은 시간동안 했다 하더라도 다른건 당연했다. 회사의 상사나 동료들은 두 사람을 '입사동기 신입사원', 'MZ세대', '요즘애들'라는 표현으로 동일하게 바라봐 왔겠지만, 업무하며 보내온 시간동안 둘은 조금씩 원래 그랬던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흘렀을 때, 이제는 도면만 봐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각각의 장점을 본인들이 알아가고 있었고, 그 다름이 도면에서 보였다. 시작은 '입사동기 신입사원' 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둘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줄 아는걸 옆에 다른사람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더 잘한다고 낙담할 필요 없습니다. 지나는 시간은 같지만 그 시간동안 하는 집중도와 방법은 다를테니, 원래 그랬던 것처럼 결국 옆의 사람과는 '다른 나'가 되어 있을테니까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생각하고 노력하면 누구보다 나은 다른 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나의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됩니다. 
오늘을 사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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