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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고리 Sep 26. 2023

[오늘#7] 말투

평범한 직장인의 김치같은 오늘#

  회사의 업무에서는 지시와 수행이 빈번하다.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리더는 지시하고, 구성원은 지시를 받아 수행한다. 단순히 지시와 수행의 관계를 넘어서서 동시에 의견을 모으고 수정하기도 한다. 난 20년 가까이 이런 삶을 살면서 입에 밴 말투가 있다.


이해하겠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제시하는 의견을 상대방에게 관철하고, 더 나아가 동일화하기 위해 재차 묻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저 말을 설명 뒤에 항상 붙인다. 업무에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생활에서도 쓰는데, 가장 두드러질때가 우리딸의 공부를 가르쳐 줄 때다. 아이가 수학문제의 계산식을 헷갈려해서 나에게 물어올 때 난 길~~게 설명하고 마지막에 항상 '이해했어?' 라는 말을 붙인다. 의식의 여유가 있을 때는 안쓰려고 하는데, 누군가에게 내 의견이나 지식을 집중해서 설명할 때는 나도 모르게 쓰는 말이다.


  설명하는 내 입장에서는 한번에 자세하게 설명하고, 이를 듣는 사람이 이해했으면 좋겠어서 붙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해하냐는 질문 뒤에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화가 스믈스믈 올라온다. 결국, '이해하겠니?' 라는 질문은 '이해해야해!' 라는 명령이나 다를바 없다. 여러 팀원들을 겪으며 질문이 아닌 명령이라는걸 직간접적으로 느낀 그 시점부터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해시키지?'


어느 사업 설명회의 모습, 저때도 내 설명은 너무 길었다.

  설명을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까라는 자의적 질문은 긴~~ 설명으로 귀결되었다. 설명을 할 때, 전문용어가 아닌 좀 더 편한 말을 쓰려고 하고, 한번 했던 설명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니 길어지는건 당연했다. 이런 긴~~ 설명의 결과, 수행원의 업무 속도와 정확성은 좋아졌을까? 결과는 좋아졌다. 그런데, 설명이 길어져서, 좀 더 자세하고 풀어서 설명했다고 결과가 좋아진걸까? 그건 아닌것 같다. 이해해야만 한다는 강요와 지루한 긴 설명은 이를 받아들이는 수행원 스스로 정화해서 나아진 결과이지, 내가 설명을 잘해서 나타난 결과는 아니었다.




  어느 저녁. 부원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다. 부원들에게 업무를 하면서 나의 방식이 까다롭고 너무 세세해서 미안하다는 식의 말을 했다. 이 말에 아직 20대 중반인 막내 부원이 한마디 했다. '저는 사회생활중에 여기 회사가 처음이라, 부장님의 방식이 까다로운지 잘 모르겠어요. 그치만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부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뭐든 다 배우는 거거든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저도 잘 알아들을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회식자리여서 이렇게 좋게 말해 줬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말에 난 감동을 받았다. 다 배우는 거라니... 어찌되었든 내 말과 설명이 저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보네...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내내 떠올랐다. 그런데, '아... 그런거구나. 나도 그랬지...' 막내 부원이 한 말은 감동을 받을만한 좋은 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막내시절 내 선임과 팀장이 행하는 나쁜 말과 행동을 본 받았었으니까. '그래.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저런 행동만 안하면 좀 더 나아질텐데...' 이런 생각이 영향을 줘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거니까...


  그날의 회식은 다시한번 나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시의 상세함과 간결함의 중도. 그 중도를 찾기위해 고심했다. 고심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또다시 고심하고 지시했다.


  無爲自然(무위자연)이라 했던가. 일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서 긴장하게 하기 보다는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업무를 하게끔 유도했다. 유관기관에 제출해야 할 보고서의 마감시간이 2시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괜찮아. 아직 여유있어.' 라는 말로 다독였다. 내 마음은 조마조마 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렇게 한 뒤로는 프로젝트의 마감시간이 지난적은 단 한번도 없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는 일에 누구 하나 열심히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각자 맏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할겁니다. '왜 이렇게 했지? 왜 이리 늦는거야.' 라는 생각은 업무방법에 대한 의심으로 귀결되고, 의심은 내 방식의 일방적인 강요로 변합니다.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세요. 까짓거 좀 늦거나 틀리면 어떻습니까.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좀 늦으면 시간을 조율하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됩니다. 



나의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됩니다.
오늘을 사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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