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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Dec 20. 2023

망각과 심리적 거리두기

나를 다시 일하게 만드는 것

오늘은 회사에 가지 않은지 207일째다. 벌써 회사에서의 기억은 전생 같다. 회사에서 웃고 떠들던 기억은 영화 속 한 장면 같고, 고생했던 기억은 떠도는 누군가의 이야기 중 하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에게 '망각'은 축복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제 살을 찢는 해산의 고통을 잊고 다시 아이를 낳는 것도,  일이 싫어 도망치듯 뛰쳐나온 직장인이 다시 직장인이 되는 것도 다 '망각' 덕분이지 않을까.


한때 망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좀 다르다. 망각이 있어야만 용기 같은 걸 비벼볼 언덕이 생기고 마음속 소원의 면이 서는 것 같다. 그래야 다음 스탭이 가능한 것이겠다.


나는 요즘 둘째가 낳고 싶다.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한다는 건 아니고, 다시 회사를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망각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는 전쟁, 밖은 지옥이라고 하니 현실이 주는 두려움에 압도당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건가?' 생각해 보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망각 이전에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심리적 거리두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벗어나 높은 발코니에서 무대를 바라보면 배우일 때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인다. 우리가 연극 무대의 배우일 때는 상대방의 언행에 반응하기 바쁘지만, 멀리 관객석에서 무대를 조망할 때에는 각 배역의 특성과 전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각각의 상황과 욕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는 연애 하수이지만 타인의 연애에 대해서는 연애 고수가 되어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 '건강한 회고는 심리적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 양민경 퍼실레이터의 아티클 중.


시간을 지나오니까, 그 현장에서 빠져나오니까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심리적 거리 두기는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찾게 해 주는 것과 같았다. 분노와 슬픔, 힘듦이 빠져나간 후에야 다시 보이는 진심 같은 것이 있었다.




제주에서는 밤에 보이는 별만큼, 부는 바람 때문에 얼굴에 닿는 머리카락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경계가 없어져가는 나만큼이나, 뚜렷한 테두리가 없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소수의 좁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내가, 그 여름동안 SNS 세상에서 팔로우하는 사람이 100명 즘 늘어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만 한건 아니다. 누군가의 삶에 좁고 깊숙이 들어가기도 했다. 누군가의 일상에 들어가서 가장 무거운 것을 같이 들려 올려 주기도 하고, 묵혀둔 눈물샘을 터트려주기도 하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꺼내주기도 했다. 그중에서 빠질 수 없는 건, 조직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는 것.


연차에 비해 많은 일들을 하고,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조직을 관찰하고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들은 무용한 게 아니었다. 나에게 HR은 지문처럼 남아있었다. 없애려 해도 HR의 냄새가 배어있는 것 같았다. 나의 경험과 시간들이 누군가의 해묵은 고민을 덜어줄 만큼 가치 있었음에 어깨가 펴지는 순간도 있었고, 고민의 중량과 답이 쉽게 내려지지 않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그 사람에게 솔루션을 생각해 주다 잠이 오지 않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피스제주에서 노마드스탭을 한 것은 '회사'와 'HR'에 대해 '적당한 거리두기'를 할 수 있던 절호의 기회였다. 하나의 회사를 내부인도, 외부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서 바라볼 수 있었다. 노마드스탭은 오피스제주의 직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객이 볼 때 외부인인 것은 또 아니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 적정거리를 둔 채로 회사와 조직,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다. 관찰은 하나의 회사를 순수하게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회사가 던지고 싶어 하는 비전과 메시지에 동의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나아가서 오피스제주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니 그곳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 문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 조직이 더 잘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회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돈을 받지 않고도 하게 되는 자신을 보면서, 다시 HR을 시작하는 마음은 이것이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이제 회사와 hr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제주를 떠나온 나에겐, 두 가지 과제가 남겨져 있었다.


     그 심리적 거리가 다시 좁혀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퇴사사유, 번아웃이든 무엇인들 다시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사람과 조직에 진심이었던 자신을 발견했고, 그 진심이었던 것을 떠나올 만큼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덤덤히 인정하게 되었다. 예전엔 마음속에 걸리적거리는 그 '무언가'에 손을 대기에는 두려워서 정확히 직면해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요소를 분해해 보자고 마음이 먹어졌으니 심리적 거리 두기가 잘 이루어진 것 같다. 일에 있어서는 이제야 건강한 회고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앞을 막고 섰던 수문장의 키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는 않으며, 그렇게 많은 무기를 들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음이 이제야 보인다. 약간의 싸움이 쉽지는 않겠으나, 이것을 거친 뒤에 다음 스테이지로 향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문득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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