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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Dec 21. 2023

내 알고리즘에 뜬 사람과 다음날 술 마시게 될 확률은

영감을 전하는 이시보 양조장

내 알고리즘에 뜬 사람과 다음날 우연히 술을 마시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사람이 빚은 술을 마시게 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때는 아사히 생맥주와 먹태깡이 귀하던 여름. 그날은 시골 동네의 크로스핏 단합대회였다. 대회 시작 전 시간이 남아 음료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그렇게 찾고 찼던, 아사히 생맥주가 있었다. 순간 인터넷에서 본 누군가의 리뷰가 떠올랐다.


'냉동실에 살짝 얼렸다가 까서 먹으면 극락임'
'이거 마시면 다른 거 못 마심'
'두 손으로 감싸 쥐면 거품도 올라와요'  


0.1초 만이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집어 들었다. 술을 잘하지도 못한다는 변명을 댈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박스로 걸어 들어갔다. 운동 전에 음료수도 아니고 뒤풀이에 마실 맥주부터 사가다니, 아마 그날 시작 전부터 심박수가 100 이상은 넘지 않았을까.


박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시골의 구수한 감성답게 고동색 대형 고무대야에 캔음료들이 얼음과 몸을 섞고 있었다. 거기에 아주 깊숙이, 아무도 모르게 내 아사히 생맥주를 감추어두었다. 단합대회 뒤풀이 때까지 아무개의 손에 들어가지 않기를 기도하며.


그런데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누가 또 고무대야를 가지고 들어왔다. 야무진 팔뚝에 이마에 조금은 맺힌 땀방울, 그리고 그 사람의 품에 담긴 길쭉한 병들. 그 병 속에는 뽀얀 아침햇살이 담겨 있었다. 막걸리다.


하얀 것, 막걸리,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


어? 내가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이다.


 '혹시 이시보세요?'


간 밤, 인스타그램 탐색탭에서 우연히 '이시보 막걸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피드를 본 적이 있다. '이시보'는 술이 맛있게 익는 온도인 '25도'를 쉽게 발음한 것으로, 젊은 대표가 할머니의 가업을 이어서 하는 스몰브랜드다. 내가 본 피드는 경험을 나누고 취향을 찾는 제주 기반 커뮤니티인 서담채에서 열린 프로그램이고, 이시보 양조장에 들르는 것이 주어진 코스 중 하나였다.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게 있구나 하고 대충 넘겼는데 어제 우연히 본 사람이 내 눈앞에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든 술을 마실 줄 누가 알았을까. 그날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품에 안아온 뽀얀 스파클링 막걸리를 그냥 마시기도 하고 섞어 마시기도 했다. 맥주 반잔이면 취하는 우스운 주량을 가졌지만 그날은 하나도 취하지 않고 집에 돌아갔다는 것은 또 얼마의 확률이 될까.  


그리고 그날 아사히 맥주는 어떻게 되었을까?

뒷전이 되어 내 방 냉장고로 들어갔다.

그날은 아사히 생맥의 맛이 궁금하지 않았다.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람과 술을 한잔 주고받은 확률은 그렇다 치자, 그 사람과 알고 보니 같은 체육관을 다니는 것도, 동갑내기인 것도 신기하다. 이 좁은 제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워낙에 다양해서, 별로 놀라울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아직 경기도 촌년이라 반갑고 기쁜 마음은 감춰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공유오피스 동료들에게 바람을 넣었다. 여름이 지나기 전에 그 양조장에 직접 가서 구경해 보자고. 그래서 나는 이시보 대표를 만날 때마다 인사처럼 말했다.


'우리 매니저님들이랑 양조장에 꼭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그 말이 정말 안부인사처럼 되었을 때, 그러니까 '갈게요'  '-네 오세요'가 다섯 번 넘게 반복되었을 때 정말 양조장에 갔다. 그때는 두꺼운 청바지를 이제 막 꺼내 입은, 낙엽 지는 가을이었다. 스파클링 막걸리에 빠진 그날로부터 2 달반이나 지나 양조장에 가기까지. 그 시간은 길고 길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이시보 브루어리.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웅장했다.


거기다 직업병은 어디 못 갔다. 일 앞에 가진 그 사람의 why와 태도가 늘 궁금한 인사담당자의 눈빛으로 의자를 당기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실용음악을 전공했다는 그의 말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머리를 헤집어놓기 적당했다. 마이크를 쥐고 노래할 사람이 여기 큰 스뎅 앞에 서서 뭔가를 발효시키고 농사지으며 땀 흘리는 삶을 사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삶과 일을 이해하는 창이 좁았던 나는 이어서 질문했다.


"노래하고 싶지 않아요? 아쉽지 않아요?"


그 물음에 단호한 답이 이어졌다. 그의 답변을 내 기억 속에서 재구성하면 이런 가락이었다.


'저는 궁극적으로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삶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영감을 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실용음악을 할 때는 그 방식이 노래였지만, 지금은 이시보를 통해서 영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만나서 상호작용을 하고 영감을 나누는 자리엔 꼭 술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자리에 이 막걸리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저는 이런 방식으로 영감을 전하고 있어요. '


망설임도 없고 눈빛에는 흔들림도 없었다. 아마 그 답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땀 흘린 시간 속에서 찾아온 게 아닐까. 이건 가업을 잇는 수동적인 삶과는 완전히 다른 궤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유가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여유였다.


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 직접 농사해 술을 빚는 장인정신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이 가진 스토리와 술에 대한 철학, 그리고 술맛은 여러 가지로 현장에 있는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렇게 기억되는 건 그날 너무 빠르게 취해서였을까. 그날 나는 일행보다 먼저 차에 실려 집에 들어갔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이유가 언제나 든든히 박혀있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묘한 질투심 때문이었을까.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A to Z 만들어나가는 동갑내기의 삶에 배가 아파서였을까. 그날 천장을 바라보며 침대 위에 한창을 누워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목도리를 해야 하는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봤다. 이시보 대표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하고 있는 피드가 올라왔다. 저 사람은 막걸리를 만들어도, 농사를 지어도, 노래를 불러도 자기가 하고 싶은 바를 해내고 있구나 싶었다. 지금 30대의 초반 이 시점에서 내가 이유 모르게 찍는 점들이 어떤 선들을 그리게 될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가끔 노래를 해도, 막걸리를 만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서 조급함과 불안함이 덜어진다.  


다시 육지에 올라와 이제는 무엇으로 돈벌이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나에게, 그날 이시보의 말은 "what"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답을 던져주는 것 같다. 지금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통해서 일을 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직업도, 직무도, 비즈니스도 결국 궁극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결국 내가 세상에서 만들어내고 싶은 것은 뭘까. 작은 날갯짓이라도 나만의 무늬를 갖고 나만의 색으로 칠하고 싶은 건 뭘까. 누군가가 내게서 일하는 why를 물었을 때 한 번의 흔들림 없이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새롭게 찾아올 날은 언제일까. '어떤 방식으로든 영감을 주는 사람'이 내게 전한 메시지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노라고 동갑내기와 술잔을 기울이는 그런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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