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오피스 노마드스탭을 마무리하며
여름에게 빚진 게 있었던 건지 이번 해엔 여름을 펑펑 맞았다.
당당하게 내리쬐는 햇빛
맞으면 아플 것 같이 쏟아내리는 비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지나는 바람
흡하고 잠깐 숨을 참게 하는 높은 습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비고도 남는 수많은 땀방울들
나는 한 다섯 해 정도의 여름을 몰아서 산 것 같다. 여름은 삼십 년간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었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내 장례식에 온다면 지난여름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했다.
이 모든 일과 인연의 시작은 제주 사계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였다.
공유오피스에서 노마드 스탭(한달간 숙박을 제공받고 약간의 Work Duty를 수행하는 상주 Staff)으로 지내며 뜻밖의 평화와 사랑 속에서 더는 바랄 게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공식적인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쯤 함께한 이들에게 밤새 짧고 긴 편지를 썼다.
"요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시한부 교수가 멋있게 죽음을 준비하는 내용)을 읽고 있어요. 그래서 '산 자의 장례식(living funeral)'에 대해 생각해 보는 중이랍니다. 매니저님은 제주에 계속 계실 테죠? 육지에서 열릴 제 결혼식에는 안오셔도 괜찮지만, 혹시 제가 살아서 장례식을 연다면 그때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 해 여름에, 동네바보형처럼 제대로 하는 게 없었어도 얼마나 사랑받았었는지, 크로스핏을 하며 부기가 빠져가는 얼굴은 어땠는지, 제 작고 수많은 실수들을 기억하는지, 여름에 함께 흘리던 땀을 기억하는지.. 인생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생각날만한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로서, 죽음을 앞둔 제게 꼭 찾아와 말해주세요.
그리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난 제주에서의 삶처럼, 이 생을 떠나 천국에서도 행복할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여름에 쑥과 마늘 대신 녹진했던 땅콩버터와 사랑을 먹고 사람이 되어갔던 기억은 평생에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제주살이를 연장하기로 했다. 집에 언제 돌아갈지 정하지 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