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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2013.11.08.

소개하고 싶은 것

   책은 두고두고 펼쳐 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그리고 책에 쓰인 내용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데, 책을 보는 사람은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과제 주제인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생각나는 책은 지금 소개해 드릴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입니다. 


   저한테 이 책은 감명 깊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책을 처음 보게 됐던 당시, 참 간절하고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거의 십 년 전, 제가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무렵 간절한 마음으로 책의 첫 장을 펼쳤고, 십 년이 지나 얼마 전 책장 깊숙한 곳에 있는 걸 꺼내서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책의 첫 장을 펼쳐 봤습니다. 얼마 전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지난 십 년 동안의 세월을 앞 뒷장으로 넘겨가며 하나씩 풀어놓겠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의 저자인 ‘레나 마리아’는 매스컴에서 간간이 소개되었던 스웨덴 태생의 가수이며, 세계적인 유명인사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팔이 없었고, 왼쪽 다리는 오른쪽에 비해 반 이상 짧은 다리였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이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수영선수였고, 오른쪽 다리로 밥도 먹고 운전도 하고 심지어 재봉틀도 돌리며 비장애인보다 더 잘하는 것이 많은 사람으로, 그리고 한 남자의 사랑하는 아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 년 전, 사춘기 소녀였던 저는 우연히 tv로 레나 마리아를 알게 되었고, 그녀가 집필했던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를 당장이라도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그녀의 책을 사서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그녀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그리고 끊임없이 제 자신을 괴롭혔던 원망을 가지고, 어쩌면 그 원망에서 벗어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간절함으로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십 년 전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그저 제 마음이 답답했지만, 한편으론 그녀의 당당함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또 이런 제 자신이 참 싫고 원망스러웠는데, 차마 그녀의 삶 앞에서는 제 원망스러움을 드러내기가 겁이 났던... 십 년 전의 모습들이 얼마 전 교육행정 과제로 인해 이 책을 다시 보면서 머릿속에 계속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몸의 왼쪽에 마비가 와서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재활치료와 언어치료,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왼쪽에 힘이 없어서 어렸을 땐 걷는 것도, 뛰는 것도, 똑바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고, 말하는 것도 어눌해서 제가 하는 행동들 대부분이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지금은 어렸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일 때가 있고, 여전히 실생활 속에서 불편한 점들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90년대 중반에는 통합교육이 활성화되기 전이라서 사람들의 인식 또한 좋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통합교육이 활성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거의 이십 년이 지나도 제가 느끼기엔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저를 특수학교에 보내지 않으시고 일반학교로 저를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의 이 깊은 뜻도 헤아리지 못하고 원망만 앞섰습니다. 학교에 가면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매일 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때리고, 놀리고,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 아이들이 저를 쳐다볼 때마다 아주 경멸하는 그 눈빛들... 어린 저에게는 너무도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에도 십 수 번 이상 차라리 특수학교에 보내지 왜 나를 일반학교에 보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감사라는 것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중학생 때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저의 마인드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렇게 첫 장을 펼치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저와 비슷한 상황들을 엿볼 수 있었고, 비슷한 상황 속에서의 저와 그녀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반 아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볼 때, 그녀는 될 수 있는 한 성실하게 그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아이들이 저에게 몸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서... 저에게 그렇게 물어보는 게 너무 싫어서... 그 상황을 애써 회피했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별명으로 아이들이 그녀를 부르면서 놀리면, 그녀는 오히려 그 별명을 재미있게 생각했고, 아이들은 놀림을 받는 그녀가 오히려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 점점 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저를 조롱하는 별명이 너무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별명을 들을 때마다 혼자 교실 구석에서 울거나 경멸감을 몸소 느꼈습니다.

 

   십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그녀와 제가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달랐던 모습을 애써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또 이와 같은 상황이 생기면 그녀처럼 해 보고 싶다는 다짐도 하게 되면서 조금씩 용기를 가지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십 년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그녀가 생각하는 삶에서의 ‘감사’였습니다. 감사함이 적힌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이렇게 원망스럽고 내가 너무 싫은데, 두 팔도 없고 한쪽 다리도 반 이상 짧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감사한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함을 십 년 전 그때는 애써 들추기 싫어서 그냥 묻어뒀습니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었던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땐 중학생일 때 보다 더 제 자신이 미치도록 싫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그녀를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엔 이 사람은 외국 사람이니까... 라며 별개의 사람이라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꽉 막힌 제 마음의 방에 그녀의 삶이 조금씩 희망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십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지금은 제 삶에서 감사한 게 많아짐을 스스로 느끼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느끼지 못하는 감사함을 저는 매 순간 경험하면서 저만의 소소한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사춘기의 절정이었던 중·고등학생일 무렵, 당당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의 밑바탕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웠던 제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도 안겨 주었습니다. 이번 과제로 인해 이 책을 또다시 읽게 되면서 과거의 저에게로 여행을 한번 다녀오게 된 것 같아 참 의미 있게 생각됩니다. 


   여행을 끝마치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태까지 스스로 '나는 당당해야 된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열심히 해야 된다, 포기하면 안 된다...' 이렇게 되뇌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과제를 통해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를 다시 읽고 생각해 보니 저도 모르게 저 자신에게 ‘무엇을 해야 된다’라는 부담감을 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십 년이 지나서 다시 읽게 된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가 넌지시 이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진영아~ 당당해도 괜찮아. 상처받으면 아파해도 괜찮아. 그리고 그 아픔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태까지 잘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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