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 못한 고고학의 원칙
운 좋게도 집이 박물관과 가까운 편이라 아이들을 앞세워 주말이면 박물관을 자주 들락거렸다. 아이들이 크고 나니 또 박물관이냐며 이제는 같이 안 간다고 손사래를 친다. 자주 가서 익숙해지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 다 다르기 마련인가 보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고 있으면 옛사람들의 지혜와 예술적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해 보고, 내가 그 시절에 살았더라면 과연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 낸 유물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은 타임머신을 타본 적은 없지만 타임머신으로 과거를 여행하는 것과 상응하는 경이로운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유물들이 기억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다면 제각각 얼마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넘쳐날지, 그 긴 시간에 담긴 희로애락은 우리에게 어떤 감흥을 줄지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다.
박물관 밖 여러 유적들도 우리의 호기심을 키운다. 경주의 신라 천마총이나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을 관람한 적이 있는가? 실제 능이 아닌 복원된 공간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오묘한 공간에 취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다. 현대 문물에서 느낄 수 없는 켜켜이 묵힌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장대한 서사를 사랑하기에 더 많은 유물과 유적을 보고 느끼고 싶은 개인적인 바램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래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신라와 백제 능을 보면서 '돈이 되지 않으니 발굴 예산 편성도 안 해주나 보네!'라며 황금만능주의에 연결하며 사회문제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1971년 백제 무령왕릉이 17시간 만에 졸속으로 발굴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않은가! 빨리 저 안에 있는 유물들을 발굴하여 내가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얼마 전 TV의 한 프로그램을 보다 나의 욕심이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 고고학 교수님께서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발굴하지 않고 땅속에 두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큰 보존이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유물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발굴하여야 하며, 발굴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으므로 현세대는 성급히 발굴하기보다 오히려 온전한 모습 그대로 후대에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고고학이란 학문이 가능한 한 빨리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시대상을 규명하고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널리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과거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나의 개인적 호기심이고 이기심이었다는 머릿속 결론에 이르는 순간 보는 이가 없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요즘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는 사적지를 다녀보다 보면 간간이 '발굴중' 푯말과 함께 접근이 제한된 곳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의 발굴 작업을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듯 흥미진진하고 스릴이 넘치는 보물 찾기로 넘겨짚은 나의 무지를 반성하며 내가 어설프게 잘못 알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금 되돌아본다.
일의 본질에 대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한 맞닥뜨린 눈앞의 일의 시시비비에 매몰되어 있을 때 넓은 시각을 유지하고 일의 의의를 떠올리고 동기를 북돋아 주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항상 즐겁게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에게 "무엇이 항상 그리 즐거우십니까?"라고 묻자 "지구를 깨끗이 하는 일을 하고 있어 즐겁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어떤 일이든 일의 본질이란 위대하고, 그 본질을 찾기만 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그 일에 임할 수 있다. 또한 본질에 비추어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점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