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카와 이감독을 만나기로 했다. 막학기 때 들었던 문예창작론 수업에서 알게 된 친구들인데 신기하게 졸업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졸업 후 이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알파카는 최근 인문학부 졸업생을 우대하는 희귀한 회사에 취업했다.
우리가 늘 만나는 곳은 합정과 망원 사이에 있는 작은 술집이다. 우리 모두 그 공간을 너무 좋아해서 한 번 가면 죽치고 있곤 했는데 오늘은 친구들을 데려가고 싶은 다른 장소가 있어서 금방 일어났다. 합정에 위치한 ‘서양미술사’라는 술집이었다.
서양미술사가 술집이 아닌 카페였던 시절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술집으로 자주 오해를 받는다는 고충을 토로하셨다. 얼마 후 서양미술사 인스타그램에는 잠정적 휴업에 들어간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얼마 후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은 기꺼이 사람들이 오해하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로 결심하신 것이었다.
낮에는 ‘성지커피’라는 간판을 세워놓고 카페로 운영하다가 밤에는 ‘서양미술사’로 간판을 바꿔서 술을 파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 같았다.
너 술 좀 하는구나?
아닌데? 나 술 안 좋아해..
에이 거짓말 치지 마~
오해 받던 제비는 억울한 나머지 스스로 주당 망나니가 되어버리기로 결심하는데..
-to be continued...
상수동의 ‘제비다방’이 밤이 되면 ‘취한 제비’가 되는 것과 같이 철저한 이중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영업 방식의 경위와 무관합니다.)
아무튼 리뉴얼된 서양미술사의 메뉴 대부분은 위스키다. 알파카와 이감독과 나는 위스키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장님의 추천을 받기로 했고, 기대보다 훨씬 장황하고 유익한 위스키교실이 펼쳐졌다. 한 번 빠지면 대체 불가능하다는 강한 위스키 어쩌고와 고민하다가 탄 나무 향(?)이 끝에 남는다는 기본적인 위스키 저쩌고를 시켰다. (유익한 시간이었으나 까먹음)
잠시 후 온더락잔에 위스키가 나왔다.
“어, 이거 근본 있는 얼음인데.”
이감독이 말했다.
유리잔 안에는 크고 동그랗고 영롱한 얼음이 있었다. 우리는 작고 달그락 거리는 얼음 잔에 나오는 술만 마셔봤지 어디 가서 위스키를 시켜본 적 없는 이십대 후반의 가난한 인문/사회학부 졸업생들이었던 것이다. (막학기에 시를 쓰겠다고 문예창작론을 듣는 순간부터 이 장면은 예정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근본 있다는 거 나한테는 최고의 칭찬인 것 같아.”
알파카가 별안간 감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근본 없다는 건 나쁜 거야?”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거 좀 애매한데, 음식 같은 경우에는 ‘근본 있다’고 하면 진짜 좋다는 뜻인데, 음악일 때는 ‘근본 없다’고 하면 왠지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감독은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근본 있는 디자인’인지 아닌지를 디자이너들끼리만 귀신 같이 알고 있으며 자신은 그것을 암만 봐도 알아챌 수 없음에 두려움을 느끼던 것이 최근 ‘근본’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게 된 경위라고 설명했다.
“디자인은 확실히 ‘근본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일 것 같다.”
우리는 ‘근본 있다/없다’는 말이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칭찬이 되거나 욕이 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럼 사람은?”
“‘그 새끼 진짜 근본 없는 새끼야’이러면 완전 안 엮이고 싶을 것 같지 않아?”
음식, 술, 사람, 디자인 등 대부분 원 뜻대로 ‘근본 있음’이 칭찬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음악처럼 약간 애매한 주어들도 있었다.
“어 그런데 ‘근본 있는 문학’은 완전 욕 같아!”
대체로 ‘근본 있음’은 칭찬이 되지만 그 ‘근본’이 엉망일 경우에는 ‘근본 있다’는 말이 칭찬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모양이었다. ‘근본 있는 정치’가 좋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서양미술사가 카페이던 시절 사장님께 내 시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시를 잘 보여주지 않는 편인데, 내게 <서양미술사>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고 내 시와 같은 이름의 가게를 발견했던 것이었다.
<서양미술사>를 읽은 사장님은
“와.. 시를 전공하셨나봐요.”
라고 말했다가,
“아니, 그러니까 배운 시 같다- 뭐 그런 뜻은 아닙니다.”
라고 황급히 덧붙였다.
사장님도 문학에서 ‘근본 있다’는 말이 욕이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근본 없는 문학’을 다짐하며 근본 있는 위스키를 홀짝이다보니 시간이 엄청 빨리 흘러 막차가 끊길 때까지 근본 없이 마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