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든든한 교회오빠들이 있었듯이 나는 남자 후배들에게 교회누나였다.
소설이나 만화 속, 주인공 남학생의 교회누나는 세상에서 가장 상냥하고 친절했다. 몸도 약했고 어떤 소설에서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교회남동생은 그런 누나에게 연민의 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에겐 그런 녀석이 없었다. 연민의 정을 느낄만한 아무런 상황도 나에겐 없었고 그다지 상냥하고 친절한 교회누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절하기는커녕 마주치면 심부름 잘 시키고 잔소리하던 누나였다. 심부름이란 문학의 밤 연습을 하며 간식으로 라면을 삶을 때, 라면과 수프가루를 봉투에서 조심스럽게 꺼내 놓고 빈봉지는 곧바로 딱지 접기 해서 버리기, 라면먹은 그릇 설거지하기, 따위였다. 교회식당 싱크대위에 수프가루가 떨어져 있거나 빈 봉지를 딱지 접기 해서 버리지 않아 쓰레기통이 온통 라면 봉지로 넘쳐 날 때면 폭풍 잔소리를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 남자 후배들은 나보다 한참 아래도 아니었고 고작해야 1-2년 아래였다. 이제는 어느덧 녀석들(?)도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아 열심히 제 역할들을 하고 있다. 교복 입던 때에 만났던 녀석들이라 편한 자리에서는 나보고 여전히 “누나”라고 부르고, 나도 녀석들에게 여전히 이름을 부르고 반말도 한다.
나같이 까칠했던 교회누나가 아닌, 정말 친절했던 다른 교회누나도 있었다.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그 언니를 누나도 아니고 깍듯이 “누님”이라고 부른다.
모든 교회남동생들이 “누님”이라 부르던 친절했던 언니는, 모든 교회 여동생들이 좋아했던 “교회오빠”와 결혼을 했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오빠와 언니를 자주 뵐 수는 없어도 카톡으로는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교회누나인 언니는 모두에게 여전히 친절하고 상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