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있는 친구들을 만나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있다. “내 새끼 키울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이뻐!”
손주가 없는 나는 그 말에 실감이 안 나 맞장구는 못 치고 툭 한마디로 호응해 준다.
“에고, 이제 네 나이 생각해서 적당히 해.”
손주를 예뻐하는 방식과 과정이 어떻게 변화될지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 친구, 대용량 정수기가 흔치 않았던 때에 정수기 물을 받아 두었다가 덥혀서 신생아 딸 목욕을 시켰다. 마지막 헹굼 할 때였지만!
원하는 사립초등학교를 보내고 싶어 이사까지 마다하지 않았고, 딸이 중학생이 되자 고등학교 수학을 직접 가르칠요량으로 수학학원을 다녔다! 이과 출신이라 원래 수학을 잘했지만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열정이 친구들 사이에서 약간의 시샘과 부러움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도 가끔씩 눈치 봐가며 딸에게 말한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손주, 한글 읽기와 글쓰기는 정석대로 가르쳐 줄 수 있어.”
그 뒤에 이어지는 딸의 속사포 같은 대꾸는 늘 똑같다. “엄마, 그만해! 나는 환경오염으로 언제 멸망할지도 모를 이 지구에 덜렁 아이 혼자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아! “
무슨 엄청난 사명과 배려심과 논리가 깃든 것처럼 말을 하는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한 바가지씩 상한다. 곧 속으로 두 바가지 욕을 퍼붓는다. ‘뭐라는 겨? 제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온 게 원망스럽다는 거야? 마치 저는 이 지구에 오염물질을 하나도 안 버리는 것처럼 말하네?
너, 소고기 좋아하지? 소가 먹어치우는 지구상의 녹지대가 어마어마하다는데 그건 괜찮니?‘ 커피 좋아하면서 그 커피가 누구 손에서 어떻게 키워져서 별다방에 들어오는지는 아니?
그래, 됐다! 내 생애 손주 복은 없다!
그러니 내 책들, 탐내지 마라. 너 추석때와서도 내가 수업하며 모아 둔 책들, 그중에서도 그림책들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지? 내가 네 속을 모를 줄 아니? 그 얇은 그림책 값이 중고서점에 팔아도 얼마인 줄 알아낸 거겠지.
엄마, 황혼육아에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친구들과 또래 할머니들에게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예전부터 별러오던 일을 곧 시작할 거다.
내 금쪽같은 그림책들과 어린이책들이 네 손에 넘어갈 일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