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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최고의 글쓰기선생님 7.

정답이 없는 정답을 기대하며 질문하지 않기

by 시골사모

이 땅의 내 또래, 친구 같은 할머니들께!

친구야, 그대는 학교 다닐 때 기억나는 최고의 스트레스가 무엇이었니?

나는 수업 중에 선생님으로부터 갑작스레 날아오는 “질문에 답하기”였다.

한창 상상과 공상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여중2학년, 사춘기시절이었지. 점심시간 후의 5교시 물상(요즘은 물리라고 하던데) 수업은 자장가 없이도 솔솔 잠이 쏟아지던 때였고. 그 틈에 날아온 선생님의 질문은 그다지 날카롭거나 어려웠던 게 아니었다. 잠깐 졸다가 살짝 놓친 것뿐이었는데도 엄청 속이 상했다! 질문에 답을 못 한 창피함 때문이 아니었다.

너희들이 돌려보던 내가 쓴 연애소설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한창 궁리 중이었고,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가 기가 막힌 은유법으로 완성되려던 찰나에 하얗게 재가되어 날아가버렸거든!


할머니 친구들아! 읽지는 못해도 그림책만 보면 헤벌쭉 웃는 손주가 제 손으로 그림책 한 권 뽑아 들고 기저귀 찬 채로 뒤뚱뒤뚱 아슬아슬 조마조마 걸어와 할미 앞에 그림책을 팽개치듯 내려놓고, 머루 알 같은 까만 눈동자를 떼굴거리며 우아우워 쏼라거릴때 제발 유치원선생님 말투 좀 흉내 내지 마라! 또 책에 관심보이는 손주가 신기하고 기특해서 그럴 테지만 지나치게 큰 목소리와 넘치는 존댓말이 아이의 정서와 언어습득과정에 무리가 될 수도 있다더라. 언제 너희 집에 갔을 때 네가 손주에게 “에구 우리 ㅇㅇ도련니임~ 이러셨어요, 저러셨어요.”말했던 것을 보았기에 하는 말이다. 나도 그랬고 너도, 엄마한테 존댓말 한 꼬랑지라도 제대로 붙여 본 적 있었던가?

너는 아직 엄마가 살아계시니 이제라도 존댓말을 쓰면 좋겠더라. 치매 앓으시는 엄마에게 답답함과 속상한 마음에, 네 마음 같지 않게 큰소리를 낼 때도 있지. 그런데 그 말도 존댓말로 하다 보면 파르스름하게 날 선 뾰족한 말투가 조금은 무뎌질 거다!


글쓰기 수업 때 만난 강사 한 분은 초등학교입학도 안 한 손주에게 책 읽어 줄 때, 괜스레 과장된 큰 목소리로 읽지 말고, 목소리 연기도 하지 말라더라. 책을 읽고 나서도 반드시, 꼭 아이에게 질문을 해야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던데 나는 이 말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이 얘긴 다음에 직접 만나 좀 더 자세히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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