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연임과 동시에 향후 언제 또다시 공연해 줄지 여부를 기약할 수 없는 귀한 발레 작품이었기에 제법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갔던 <카멜리아 레이디>. 게다가 매번 수준급의 퍼포먼스로 나를 감동시켰던, 믿고 보는 국립발레단의 공연이었기에 더욱더 큰 기대를 했었더랬다. 여기에 하나 더, 무려 쇼팽의 음악을 이용하여 만든 드라마발레라는 결정적인 사실은 내게 첫 <카멜리아 레이디> 관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최고조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갈 만큼 높이 높이 치솟아 오른 '기대'라는 녀석은 실제 무대 앞에서 모든 동력을 잃고 처참히 무너지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해야만 했다.
비극적 결말로 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애석하게도, 공연 자체의 수준 탓이라기보다는 주변 관객의 매너였다. 이런 이야기를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가히 '관크'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도저히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감상을 이어나갈 수가 없는 처지이니 부디 너른 마음으로 이 넋두리를 이해해 주기 바라며 써 내려가 본다.
내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주 관객은 두 명이었으니, 한 명은 나의 왼편에 앉은 한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관람객이었고, 또 한 명은 내 뒷자리에 앉은 여성 관람객이었다. 우선 왼편에 앉은 이 관객은 공연 중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보며 찬란한 화면 불빛으로 시선을 강탈하였고, 잊을만하면 메시지 알림음을 내 귓가에 속삭이며 아름다운 음악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장바구니에 버금갈 만큼 제 몸만치 커다란 쇼퍼백에 휴대전화를 수시로 쑤셔 넣었다가, 부시럭대며 꺼내기를 반복하여 옆자리에 앉은 내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는 공연 도중 예쁜 파드되나 코르드발레 장면이 보이면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 영상을 찍기도 했다. 한편, 뒷자리에 앉은 여성은 아마 (인터미션 때 살펴본 모습으로 조심스레 추정해 보건대) 정신의학적 작은 문제를 지니고 계신 것 같았는데, 공연 내내 비닐우산을 부스럭거리며 머리를 흔들고 그때마다 가방에 달린 쇠장식들이 덜그럭 덜그럭 소리를 내며 환장할 만한 화음을 음악에 부여했다. 이렇게 옆, 뒤로 공연 내내 사람을 미치게 만드니 정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원래 인터미션 때 그냥 집에나 가 버려야겠다 마음먹었으나 공연장 안내원의 제안으로 다른 쪽 구석좌석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결국 끝까지 관람을 하게 되었다. 안내원을 통해 자리를 이동하여 본 3막을 제외한 나머지 1, 2막의 공연은 솔직히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떻게든 집중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 봤으나 속수무책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기억나는 것은, 개인적으로 쇼팽 음악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리사이틀이 아니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피아노 연주가 조금 아쉬웠다는 점, 안무가 꽤 섹슈얼했다는 점(이거 어린 친구들이 봐도 되는 건가?), 안무 자체에 집중하는 건 좋지만 무대 연출이 너무 단출한 것 같았다는 점이다. 또한, 평소답지 않게 퍼포먼스의 완성도에서도 아주 조금의 아쉬움을 남겼으니, 전반적으로 혹시 준비 과정이 조금 빠듯했나 싶은 의문이 드는 공연이었다.
그래도 3막에선 쾌적한 관람 환경이 영향을 미쳤는지 앞선 무대보다 한층 더 섬세해진 감정 연기, 부드러워진 춤선을 느끼며 감동받았고, 다행히 마지막은 아름다운 감상으로 마무리하고 나올 수 있었다.
좋아하는 국립발레단의 공연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상을 쓴 것은 이번이 난생처음이라 더욱더 아쉽고 속상할 따름이다. 향후 또다시 <카멜리아 레이디>를 공연해 준다면 또 갈 의향이 분명하게 있다. 이 발레 안무 흐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고하게 그렇다고 답하진 못하겠으나 어쨌든 쇼팽의 음악들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또한, 화려하고 예쁜 무대 의상도 또 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아쉬운 점들도 있었지만 좋은 점들도 많았던 공연이니 다음 <카멜리아 레이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