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라는 이름이 무색하도록 다소 김빠지는 공연을 경험한 일이 몇번 있었던 대한민국 오페라축제였기에 올해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누오바오페라단의 <라 보엠> 하나만을 예매하였다. <카르멘>도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볼 수 없었고, <돈 조반니>도 보고 싶었으나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에 나에게 실망스런 공연을 보였던 오페라단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고사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초록빛깔 여름날에, 겨울의 감성이 그득한 <라 보엠>을 보게 되었다. 겨울이 되면 이상하게도 <라 보엠>이 무척이나 보고 싶곤 한데, 신기하게도 날이 더워지면 <라 보엠>에 대한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쏙 사라져 버린다. 그말인 즉슨, 딱히 <라 보엠>에 대한 생각이 간절하지 않은 때에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감정 몰입도 덜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감동의 크기도 덜하였다. 하지만 이 현상이 단지 관람자의 마음가짐만의 탓인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로돌포, 마르첼로, 쇼나르, 콜리네 이 네 친구들의 소개로 시작하는 1막 첫 장면은 이날따라 유난히 어수선하고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두사람의 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느낌은 썩 들지 않았고, 뒤이어 철학자 콜리네와 음악가 쇼나드가 합류하면서 네 사람이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지만 집주인이 등장하면서 또한번 합에 미세한 균열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1막이 흘러가는 가운데, 1막의 주요 장면인 미미와 마르첼로의 만남이 이어지는데 이 장면마저도 그다지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로돌프와 미미의 음색이 완벽한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2막에서도 어딘가 어수선한 느낌은 계속 이어졌지만 2막의 공간적 배경 자체가 원래 어수선한 게 맞는 설정인지라 1막보다 한결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1막에서 영 매력적이지 않았던 미미는 2막에 이르자 그나마 있던 매력마저도 다 잃어버렸고, 뒤이어 2막의 하이라이트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리아인 무제타의 Quando me'n vo soletta per la via가 등장하여 나의 기분은 한껏 좋아졌다. 또한 무제타를 맡은 하은혜씨의 노래와 연기도 좋았다.
3막은 무대 디자인을 간소화하여 무대 위 인물들의 퍼포먼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응당 눈물을 글썽거렸어야 할 4막은... 어쩐지 무미건조한 느낌을 남긴 채 끝이 났다.
누오바오페라단의 이번 <라 보엠>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그래도 시원한 곳에서 푸치니의 서정적인 오페라 선율을 감상하며 보낸 두시간은 나름 즐겁고 괜찮은 시간이었다. 푸치니의 오페라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난 푸치니 작품 특유의 서정적인 선율이 좋다. 그중에서도 <라 보엠>은 푸치니 작품세계의 그러한 특징이 특히 잘 드러나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작품이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조금은 아쉽게 다가왔나보다.)
아무래도 <라 보엠>은 역시 추운 계절에 보아야 제 맛인가 보다,라는 깨달음과 함께 공연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