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pin | 24 Preludes, Op. 28, No. 15
당사자는 이러한 찬사를 달가워할지 혹은 불편해할지 모르겠지만, 피아노를 예쁘고 수려하게 치는데 잘생기기까지 하여 참 좋아하는 미남 피아니스트 한 명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Jan Lisiecki(얀 리시에츠키)이다. 아리따운 미모로 쇼팽을 연주하는(그는 연주회장에서 주로 쇼팽 음악을 연주하는 때가 많다) 그의 모습은 화면으로 볼 때보다 직접 볼 때 특히 더욱 감동적이어서, 어쩌다 보니 그가 내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참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올해에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출연자로서 한국을 찾았는데, 하루는 피아노 협연, 하루는 피아노 독주회로써 총 두 번의 연주를 가졌다. 솔직히 협연자로서 그의 연주에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라 독주 리사이틀만 예매했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쇼팽, 바흐, 라흐마니노프, 시마노프스키, 메시앙, 고레츠키의 프렐류드를 한데 뒤섞어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솔직히 공연을 다 보고 난 후에도 그가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는지 짐작이 잘 가진 않는다. 게다가 그가 한데 모은 곡들이 모두 프렐류드이다 보니 더욱더 이 공연이 단단한 중심이 없이 가볍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렇듯 금번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다소 파격적인 구성이 아쉽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그의 음색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음색은 여전히 예뻤고, 여름밤의 청량한 분위기에 잘 어울렸으며, 피아노 연주자로서의 그의 기량 역시 결코 나무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담백하고 예쁜 연주를 듣다 보니, 국제음악제라는 공연 특성을 고려하여 대중적으로 관객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러한 순서의 프로그램을 짰나 싶기도 하였다.
피아노 치는 고운 왕자님을 바라보는 평범하고도 소박한 시민 1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객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홀하고 즐거웠던 공연이 끝난 후, 그의 사인회가 이어졌다. 나는 줄 기다리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보통 사인 대기행렬에는 참여하지 않고 떠나는 편인데, 그의 사인회는 언제나 예외다. 사실 사인회가 있을지 모르고 온 바람에 음반이 아닌 책에 그의 사인을 받았는데, 그의 사인을 받으면서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고, 이 책에 사인해준 당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라고 얘기해 주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듣는 이가 기분 좋았으니 됐지.)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을 빠져나와 맞이한 초저녁 하늘도, 은은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도, 청량한 습도 및 여름의 향기도 모두 다 아름다웠던 그날. 그래, 그가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어쩌면 “너무 무겁지 않게 청량한 여름 저녁을 즐겨 보세요. 이 아름다운 시간을요.”가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Jan Lisiecki의 최근 발매 앨범 중, 사람들에게 흔히 '빗방울 전주곡'이라고 불리는 곡의 영상 유튜브 링크를 첨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