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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지만 찬란한, <사란란 展>

by Daria



사계절, 365일, 날마다의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우리나라이지만, 특히 요즘과 같이 청량하고 아름다운 때가 또 있을까 싶다. 뭐랄까... 살아있다는 것이, 생각하는(말 그대로 기능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이 가능한) 인간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러니 저러니 내 인생에 한 번씩 훅훅 끼어들어 브레이크를 거는 골칫거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삶은, 마치 보물상자와 같이 아름답고 반짝인다.


추석 연휴 동안 마치 전시에 미친 사람처럼 매일같이 미술관을 드나들고 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나로선 전혀 아쉬울 일이 아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슬픈 일이게도 연휴 거의 내내 날씨가 꾸리꾸리했다. 이날은 그중 몇 안 되는 빗방울 없는 날이었고, 나는 이러한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부암동 산책 겸 서울미술관의 천경자 선생님 전시를 보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란란≫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보게 됐다. ≪사란란≫은 일본의 사진작가 かわしまことり(카와시마 코토리)의 개인전으로, 한국어에 서툰 작가 본인이 서울을 촬영한 연작에 '사랑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는 과정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단어를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랑랑.. 아니, 사란란. 가만히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지는 작가의 사랑스럽고 따스한 시선에 걸맞은 천진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전시는 여러 연작으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는데, 일본에서의 연작, 서울에서의 연작, 대만에서의 연작, 그리고 유명한 미라이짱 연작 등으로 기획되어 있었고, 수많은 사진들이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다양한 피사체를 담아내고 있음에도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 공통된 시선을 넉넉히 품고 있었다.

전시 초입부터 귀여운 아기의 사진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 남녀 배우를 섭외하여 촬영한 연작도 있는데, 그 사진들을 보며 새삼 청춘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청춘을 이토록 작위적인 느낌 없이 아련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표현해 낸 작가의 감성 또한 범상하지만은 않구나 싶었다.




작가의 유머가 느껴지는 사진들도 있다.

아마도 작가의 말일 것으로 추정되는 글귀도 놓여 있었는데, "그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니까요."라는 말이 깊이 와닿는다. 요즘 들어서 유난히 시간이란 참으로 날아가는 화살과 같구나 싶던 참이었거든.




중간에 작가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다. 질문에 답하는 작가의 표정이 너무나도 반짝반짝 빛이 나서 왠지 뭉클했다.




서울에서의 연작을 보며 일본이나 서울이나 대만이나 사람 사는 곳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각 나라마다 묘하게 저마다의 다른 분위기를 품고 있음이 흥미롭기도 했다.


나도 나이를 먹는지 요즘 들어 부쩍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귀여운 일본인 여자아이 사진으로 유명한 미라이짱 연작도 만나볼 수 있다. 사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가 카와시마 코토리인지 이 날 처음 알게 됐다. 워낙 유명한 사진이라 사진들만 알고 있었지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다.




일상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도 신기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것으로 여기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며 담은 사진들도 있다. 이국의 장소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이의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내 어린 시절 사진들과 중첩되어 보이기도 하였다. 어린 시절 미국의 외갓집을 오가며 그곳에서 찍힌 사진들이 많았는데 분위기나 구도가 이 연작과 닮은 점이 많아, 어쩌면 우리 엄마에게 사진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엄마의 사진 실력은 매우 형편없다.)




대만에서의 연작은 유난히 맑고 청량한 여름햇살 혹은 여름밤공기와 같은 느낌이 났는데,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만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가 보구나 싶었다. 나 역시 대만의 그러한 순수한 분위기를 좋아하거든. 내가 갔던 여행지 중 마음속에 인상깊이 남은 곳을 몇 군데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그중 대만을 절대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써 산책과 같았던 카와시마 코토리의 사진전 ≪사란란≫의 종착점에 다다랐다. 남들이 보기에 별게 아닌 것 같은 일상의 사소한 온갖 것들에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나여서인지, 사람을 향한 작가의 소박하고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탄생된 그 사진들에 마음이 뭉글뭉글 크게 동하였다.


요즘 들어서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것이, 그만큼 내게 주어진 삶을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제각각 다양한 형태를 띤 수많은 존재들이 복닥복닥 모여서 부대끼고 사는 곳, 그런 우습고도 귀여운 행성이 지구별 말고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인간 세상이란 참으로 재미난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구석구석 사랑스러운 온기를 품고 있는 것,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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