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관계 맺음’과 ‘노동’을 통해 자아를 이루어 간다. 그런데 여기 이 두 가지에 모두 다가서지 못한 인물이 있다. 그녀는「19호실로 가다」의 시점 인물인 수잔이다. 그녀는 광고회사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지적이며 계획적인 여성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집안 살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전업으로 하게 되어 직장을 그만둔다. 그녀는 ‘지적’인 여성이기에 집안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표면적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삶인 것만 같지만 그녀는 남편의 외도 소식을 듣게 되면서, 노동을 빼앗기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수전이 일을 그만두고 나자, 그녀의 자아를 이루는 두 축 중 하나인 노동이 사라졌다. 그나마 그녀에게 주어졌던 집안일은 가정부를 통해서 대체되었으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본인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며 기뻐하는 듯하였지만 이미 오랜 시간, 직장에 돌아가지 않았기에 그녀의 경력은 단절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갈 ‘노동’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 그녀의 유능함은 이제 무용하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집에는 적막만이 가득하다. 그녀는 이 적막이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온전히 자신의 자아를 ‘관계 맺음’을 통해서 찾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 남편의 불륜은 수전에게 치명적이었다. 남편의 배신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관계 맺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녀가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텅 비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혼자만의 공간’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집에 그러한 공간을 만들고 ‘온전한 혼자’가 되기 위해 집으로부터 떨어진 호텔 19호실에 그러한 공간을 만든다.
그런데 그녀는 그곳에서 분명 ‘자유’를 얻지만, 자유에서 오는 기쁨보다 더 짙은 ‘고독감’을 느낀다. 호텔에는 그녀가 그나마 맺어 왔던 자녀와의 관계, 가정부와의 관계가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혼자’ 남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홀로’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한 자아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가 보이는 행동은 호텔에 있는 시간 동안 하릴없이 바깥 풍경을 보고 있거나 벽지의 무늬를 보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5시만 되면 ‘퇴실 시간’을 알리는 호텔 주인의 노크가 그녀에게 유일하게 ‘먼저 찾아오는’ 관계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했다.
노동과 관계 맺음이라는 두 축이 끊어진 그녀는 이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낸다. 남편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사실은 19호실로 가는 이유가 새로운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새로운 자아는 거침이 없다. 더 이상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으로도 비춘다. 그러나 소설은 “그녀는 어두운 강물로 떠갔다.”라는 서술로 끝나버린다. 그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자아도 결국은 자신을 ‘사무적’으로 찾는 이밖에 없는 곳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