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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un 03. 2024

Pavia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이 아이의 키는 10센티미터. 몸무게는 1.5그램. 금발머리를 등 가운데 까지 풀어헤치고, 어깨를 드러낸 분홍반짝이 미니 원피스를 입었다. 신발도 역시 분홍이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난 곳은 아마 2010년도 쯤 체코 고속도로의 휴게소이다.

공산권을 벗어났어도 체코는 여전히 스산하고 침침한 분위기였고, 고속도로 휴게소라고 해도 우리나라 편의점보다 못한 형편이었다.

 그곳 진열대에 이 아이는 먼지를  쓰고 누워있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곳에서 이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아니! 우리 60년대에 가지고 놀던 인형 아니야?’


 어릴 적  파랗고 큰 눈을 가진 인형은 눕히면 눈을 감고 세우면 눈을 뜨고, 옷도 갈아입히고 머리도 땋을 수 있었다.  60년대 소녀들이 가지고 싶은 1순위의 선물이었으며 이 인형을 가지면 부러움의 눈길을 받았다.

보는 순간 데려와야겠다 싶었다. 볼품없지만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는 이 아이를 여기 그대로 두었다가는 공산주의시대의 조잡한 유물로 폐기 처분 될 것 같았다. 여행 중 거슬러 받은 동전을 어디다 쓰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탈탈 털어보니 충분하다. 그때 환율로 우리 돈으로 5천원 정도였다. 같이 갔던 큰 시누이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신다.

집으로 돌아와 먼지를 털고 풀어헤친 머리를 정성스럽게 한 갈래로 땋았다. 딸이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인형을 본 식구들은 다 큰 어른이 무슨 인형이냐고 시큰둥하지만 먼 땅 휴게소에 마주 친 인연으로 데리고 온 이 아이는 나의 어린 모습이었다.


작은 장식장에 넣어두고 이 옷을 만들어 입혀볼까 저 옷을 만들어 입힐까? 궁리도 하고 머리도 양 갈래로 묶어보기도 하면  어릴 적 허기졌던 인형 욕심의 갈증이 풀리게  된다.

이름도 지어주고 싶어 어떤 이름으로 지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았다. 체코에서 왔지만 체코말을 모르니 네이버에 물어보았다. 체코의 예쁜 이름을 검색하니 100개가 나온다. 그중 ‘작은’ 이라는 뜻을 가진 ‘pavia’ 파비아가 어울린다 싶어 pavia 란 이름으로 지었다. 거금 들여 지은 손주 이름만큼이나 흡족하다.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 쓴 pavia를 만난 후 십 여년이 넘도록 가지고 있는 인연이 보통 인연일까? 이 아이를 본 순간 ‘심쿵’ 했던 그 순간은 수십 년을 거슬러 소녀의 간절함과 닿아버린 것이다. 처음 본 순간 설레고 눈길이 가는 것이 꼭 이성만 있겠는가.

오천원을 주고 산 이국 땅의 조그만 인형은 나에게서 이성 못지 않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pavia’를 컴퓨터 앞에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 갑자기 사탄의 인형 ‘처키’가 생각이 난다. 죽여도 살아나는 공포영화의 주인공 인형인 ‘처키’

pavia! 모습은 다르지만 너 혹시 죽였다고 생각한 ‘처키’가 부활한 것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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