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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Apr 09. 2024

니들이 쑥맛을 알아?


 봄이다.

요즘은 웬만한 나물이 사시사철 나오지만 여린 쑥을 먹기에는 꽃샘바람이 한창 불 때이다. 멀리 남쪽바다의 해풍을 맞으며 자랐다는 거문도쑥은 봄바다의 향기가 느껴진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들에 피어있는 나무나 꽃의 이름을 잘 모른다. 나물은 거의 알지를 못한다. 나더러 쑥을 캐오라 한다면 반 정도는 국화의 새싹이나 잡풀을 뜯어올 것이 뻔하다. 나물 천지인 봄 들녘에 세워놓아도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 그저 주변 산책이나 하고 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을 들판이 아니라 마켓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쑥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특히 쑥국을 좋아한다. 쑥이 질겨지는 때가 올 때까지 자주 끓여 먹는다. 여린 쑥은 전도 부치고 튀김도 한다. 더 따뜻해져서 쑥이 세어지면 쑥버무리나 쑥떡을 한다. 그러나 전. 튀김은 아까운 쑥향기가 사라져서 제 맛을 못 내고, 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역시 쑥으로는 국이 최고이다.


 어릴 때 엄마는 쑥국을 끓일 때 쌀을 갈아 그 물을 밑물로 사용했다. 믹서기가 귀하던 때에 조그만 돌절구인 학독에 물을 부어가며 쌀을 갈아 뽀얀 물을 받혀 쑥국을 끓였다. 정성도 갈아 넣은 국물은 뽀얗고 구수하며 향기로워 쑥국을 한 대접 먹으면 나른한 봄을 이기는 보신 음식이었다. 서울에 오니 멸치국물에 된장을 풀고 쑥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다. 된장맛이 너무 강했다. 결혼을 하니 시댁은 쑥에 생콩가루를 묻혀 된장물에 한소끔 끓여낸다. 서리 내린 듯 하얗게 생콩가루를 뒤집어쓴 쑥국도 구수하게 맛나다. 같은 나물로도 내가 자란 부산과 경북인 시댁의 조리방법이 달랐다.     


 오래전 서울에 사는 친척들이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나에게는 고향이라기보다는 본적인데 예전에 교통편도 안 좋다 보니 한 번도 가 보지를 못했다. 1박 2일의 여정으로 내려가서 부모님의 신혼집과 고향의 인물들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을 들러보고 마을회관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동네 부녀회에서 쌀밥에 뽀얀 쑥국을 대접하는 게 아닌가? 어릴  때 엄마가 해 주시던 그 맛이었다. 오래간만에 고향의 인심과 엄마의 맛을 충분히 즐기고 돌아왔다.

돌아와 맛을 흉내 내려고 해도 일찍 세상을 뜨신 엄마에게 채 배우지 못했으니 엄마의 맛이 나지가 않는다. 요리법을 찾아보니 쌀뜨물을 밑국물로 사용한단다. 어떤 요리사는 쌀뜨물이 없으면 믹서기에 물과 쌀을 갈아 그 물을 사용하라고 한다. 아하! 이 방법도 좋겠다 싶다.


 오늘 친구를 만났더니 들에서 뜯었다며 깨끗하고 여린 쑥을 한 움큼 준다. 마침 받아놓은 쌀뜨물이 있어 된장을 살짝 풀고 콩가루를 씌워 끓였다. 엄마의 손맛은 안 나지만 그런대로 구수하다. 다음번에는 불린 쌀을 갈아 그 물로 한번 끓여봐야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봄나물의 맛을 잘 모를 것이다. 피자와 샐러드와 간편식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검불 묻은 쑥을 다듬고 씻어 끓여 먹기에는 번거로울 것이다.

 쑥을 100 일 동안 먹고 사람이 된 웅녀의 후손답게 이 봄날이 가기 전에 쑥국을 질리도록 먹고 배를 두들기며 속으로 외치리라.

“니들이 쑥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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