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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Dec 05. 2024

스트레스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나는 지금 평온한 상태다.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오늘 정말 오랜만에 늦잠을 제대로 잤다. 늦잠이라는 단순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기상 후의 일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간까지 잤다는 의미이다. 첫 잠은 평균에서 한참 벗어난 새벽 2시에 자서 4시 40분에 눈을 뜰 때까지 잤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눈을 떴을 땐 8시였다.

 

일어나서 20분 정도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20분 정도가 흘러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스트레스는 이때 받았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은 정말 참말이다.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밥 먹는 시간만큼 침대에 붙어있길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근데 요즘은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좀 받더라도 오래 누워있는다. 덕분에 오전에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 꾸벅거리는 것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집중력의 질을 높이기 위해 침대에서 좀 더 쉰다고 생각을 바꾸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문제다.  


방안에서만 사는 생활을 10년을 했기 때문에(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않은 인생의 최대치가 아니겠는가) 히키코모리 탈출 이후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들이나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을 대부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어젯밤에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나 이루었다. 지금의 평온한 상태는 이러한 정신적인 만족에서 온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어제저녁 조별과제 팀원이 과제 제출을 완료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AI 노출에 어떤 집단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가 하는 보고서에 대한 과제였는데 읽어보지도 않았다. claude에 번역 돌려서 몇 번 훑어보고 하기 싫어서 손 놓고 있었다. 지난 학기 팀을 했던 학생과 다시 팀을 이뤘는데 그 친구가 AI로 보고서를 요약하고 AI로 PPT까지 만들었다. 팀이 세 명이어야 불이익이 없어서 에타에서 한 명 추가로 영입한 후 내용에 대해 추가 멤버와 조정하는 시늉만 하다 초안에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냈다. 그 친구에게는 만 원정도의 스타벅스 교환권을 선물했다. '돈으로 때운다.'라는 것으로 보여 오히려 상대에게 불편하게 여겨질까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그런 것도 있고 어쨌든 고마움은 어떤 식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어서 그랬다.


과제 마감일이 슬슬 다가올 때쯤 스트레스도 스멀스멀 올라왔었는데 지난 학기 <가창실기>를 생각하니 스트레스 조절이 잘 됐다.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아무리 해대도 그건 결국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걸 가창실기 조별과제의 준비와 발표, 평가 과정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팀과제에 그런 관점으로 접근을 하니 마음이 편했다. 욕심이 있다면 열심히 하면 될 것이고, 욕심을 버릴 거면 저조한 결과도 달게 받으면 될 것이다.


포기를 한 거라면 문제겠는데 나도 이 부분에서 내가 잘하려는 욕심을 버린 것인지, 나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덜고 버스를 편하게 탄 것인지, 포기를 한 것인지 애매하다. 어찌 됐건 과제를 제출한 시점에서 팀원과 대화를 나눠봐도 문제점은 느껴지지 않고 나도 마음이 편하니 괜찮나 보다. 이렇게 살아도 되려나. 좀 더 속 편하게. 조절하면서 가야겠지.


얼마 전 마라톤을 하고 났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1km 정도를 쉬지 않고 달렸는데 출발지로 다시 돌아왔을 때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공부해야 되는데, 과제해야 되는데 등등. 죽냐 사냐 쓰러지냐 마냐의 문제나 고통이 들이닥친 몸뚱아리 앞에서는 그런 이슈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10회에 걸친 글쓰기 수업도 끝났다. 글쓰기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면서도 평소 저녁에 내 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졌던 것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요인이기도 했었다.


글쓰기는 첫 수업에 15명으로 시작한 것이 마지막 수업엔 11명으로 끝난 것이 개탄스럽긴 했지만(이 수업을 듣고 싶어도 못 들은 사람이 25명이나 되기 때문에) 마지막 소감을 나눌 땐 역시나 그런 상황에서 늘 그렇듯 인간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소감을 말하는 차례에는 평소와 달리 그런 마음을 작가님에게 말로 전달하지 않았다. 표현하기를 멈춘 것은 아닌 것 같고, 지금까지처럼 절절함을 말로 전하는 대신 그런 마음을 담아서 손을 잡았다 놓는 방식을 선택했다. 악수를 청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으로도 충분히 내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표현 방식이 늘어난 걸 보면 내 멈췄던 삶이 다시 흘러가면서 나도 계속해서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작가님은 글에 드러난 청년들의 성향을 보시고 책을 한 권씩 추천하셨다. 내가 추천받은 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이제 몇 페이지 읽기 시작했지만 작가님이 내 성향을 제대로 알아보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도 하나 있었다. 이번 끝맺음은 그 문장으로 하고 싶다.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기적 속에 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욕심낼 것도 없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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