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의 아침밥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238개의 아침밥 사진이 있다. 오늘 지하철에서 앨범 정리를 하면서 따로 모아 보니 그렇다.
2023년 9월 1일 개강 첫날부터 왠지 찍어야 할 것 같아서 찍기 시작한 '천 원의 아침밥' 사진들이 지금까지 이만큼 모였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재입학 기념으로 찍어뒀던 거라 그런지 쟁반이 다 보이지도 않고 반찬이 다 보이지도 않게 사진이 막 찍혀 있는데, 그런 걸(일의 처음) 보고 있으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 느껴진다. 아침밥을 빼먹고 안 먹은 날도 가끔 있고, 사진을 안 찍고 먹은 날도 있고, 운영을 안 해서 못 먹은 날들도 있지만 모아 놓으니 238장이나 되는 것이 신기하고 대단하다.
처음에는 8년 만에 재입학 한 새 학기가 진짜로 개강했다는 것, "요새는 이런 것도 하나 봐 너무 좋아." 하는 것들을 가족들에게 전달하고자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들을 모아서 모자이크기법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그걸 학교나 식당 측에 내 졸업 기념 선물로 주는 상상을 하면서 찍게 되었다. 입학 16년 만에 졸업을 하고 떠나면서 학교에 무언가 남기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뭔가 남들은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우월감이나 일종의 자기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체로 동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감사한 마음의 표현이다.
누군가의 지원으로 이런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와, 학생들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거의 공짜로 양질의 식사를 2년 넘게 한 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일이다. 아침에 뭐 먹을지 고민하지 않았고, 직접 준비하는 수고도 들이지 않았고, 돈도 쓰지 않았고, 건강도 지켰을 것이다.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그 마음을 외부로 방출을 해야겠다.
내 반복되는 상상 속에서 나는 만든 이미지를 포스터 형태로 인쇄를 해서 식당에 전달한다. 그러면 남색 조리복을 입은 직원분들과 하얀 위생복을 입은 직원분들, 사복을 입은 국가근로 장학생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걸 살핀다. 그리고 손에 받아 든 걸 보면서 자신이 해 온 일이 무엇이었는지, 얼마나 훌륭하게 해냈는지 서서히 느낀다.
자신의 일을 책임감과 자부심, 열정을 가지고 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그분들이 숭고한 일을 하고 계시다는 걸 스스로가 알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게 계획대로 성공한다면 나는 분명 잔잔하면서도 아주 큰 기쁨을 느낄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원하는 어떤 '일들의 울타리' 안에 있는 일이라는 걸 귀갓길에 사진 정리하면서 선명하게 느꼈다. 그래서 방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샤워를 건너뛰고 글부터 남긴다.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덕, 그러니까 동기분이 역까지 차를 태워주신 덕에 지하철에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며칠 나를 힘들게 했던 문제는 지나갔고, 선물처럼 좋은 일도 찾아왔다. 모든 지나간 작은 일들의 도움으로 오늘 이 순간에 밤늦게나마 기록을 남길 마음이 든 것이 감사하다. 얼마 안 남은 날 동안도 아침밥 사진을 잘 남겨두어야겠다. 혹시 조각이 모자를지도 모르니.
( '천 원의 아침밥'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여, 정부와 지자체 및 학교가 비용을 부담하여 학생이나 근로자가 1,000원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