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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May 01. 2024

메모 정리

.54

 커버이미지 등나무 사진 보셨나요. 저는 등나무를 좋아합니다.   


 생각

 이런저런 쓸만하다 생각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잠깐만 딴 데 쳐다보고 돌아오면 어디로 숨어 들어갔는지 안 보여서 못 쓰게 되는 일이 많다. 갑갑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생기면 웬만하면 메모를 한다. 방이면 포스트잇에다가 하고 밖이면 핸드폰 Notes 에다가 한다. 메모는 도움이 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을 전부 써먹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도 바뀐다. 그리고 조금 전에 하나가 있었는데 남기지 못한 사이에 사라졌다. 뭐였을까, 찝찝해라.


 제목도 그냥 적절하게 쓰지 못하는 거 같아서, 탈출일지에서 일기로 바뀌었는데 두 개의 종류 카운팅을 따로 해야 되나 싶기도 하는 생각도 들고 이래저래 번거로워서 그냥 제목도 그때그때 생각에 따라 자유롭게 쓰기로 하자.


 리더십개발에서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람인가? 뒤처졌거나 향상심이 생길 때, 실수해서 손해 봤을 때 몸이나 체력으로 만회하는 걸 좋아하는 기질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고, 몸이 좋으면 머리가 편하다. 방법 찾기 귀찮고, 좋은 방법을 잘 찾을 능력은 없지만 몸으로 때울 능력은 된다 생각해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근데 머리를 써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했으면 노력이 낭비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플랫폼도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 도구가 바뀌면 학습 방식도 바뀌네? 랩탑 초기화하면서 저번 학기랑 문서 소프트웨어만 바뀌었는데도 필기나 공부 방법이 달라졌어. 영향력이 무시 못할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크다고. 무식한 소리 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일관성을 깨뜨려서 새로운 태도를 형성시킬 필요가 있다 너. 효율성과 효과성에 대해서 말이야. 이런 거 좀 잘하는 사람한테 도움을 좀 받아보고 싶네. 몸이 귀찮은 걸 극도로 싫어해서 효율적인 방법을 잘 찾는 사람이 있을 텐데.


 시험공부도 마찬가지. 이번에 중간고사 치면서 안 그래도 그런 고민을 했었다. 통째로 그냥 다 이해하고 외우고 해도 어차피 실제로 문제로 나오는 부분은 일부 중요한 개념들인데 내가 지나치게 하나? 시험기간에는 좀 더 시험에 초점을 맞춰야지, 시험이랑 상관없이 지식을 수집한다는 생각으로 사소한 것까지 다 머리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걸 시험기간에 하는 게 맞나? 아닌 거 같아.


 이러는 와중에 어제 기숙사 게시판에서 학습법 특강- "완벽주의 극복하기" 강의 홍보를 봤다. '어떻게 이렇게 또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게 제 발로 떡하니 찾아왔지?' 하면서 강의를 신청했다. 비정규교과 탭에서 1시간 분량 동영상 강의를 보면 된다. 일단 강의노트 살짝 보니 완벽주의 유형이 조절초점이랑 외부내부 요소를 기준으로 투바이투로 나오는데 나는 인정추구형(향상, 외부) + 성장지향형(향상, 내부)이다. 작년부터 학교 생활하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데 내가 향상초점 인간이냐 예방초점 인간이냐는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향상초점 유형의 인간이다. 나에 대해 거짓 없이 확신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성 중 하나다.

 

 나중 가서 또 어떻게 내가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 글쓰기 관련한 생각.

지난 학기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했던 독서토론회의 초빙 작가, 우리 학교 후마니타스교과 글쓰기의 강사이자, 소설가인 손보미 님을 봤을 때를 계기로 처음 생각했던 화제가 있다.

'작가님은 자기 책에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사람과 세상을 보는지 다 드러내놓는데 그걸 읽은 사람들과 만날 때 두렵지는 않을까? 특히 소설가끼리도 만나는 일이 있을 텐데'


 사실 저 생각은 작가님한테 사인을 받는 줄을 서는 순간에, 책에서 보여준 인간을 보는 소설가의 아주 섬세한 관찰력이 현실의 나에게도 작용할 텐데 나는 어떤 인간으로 묘사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비단 글 쓰는 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저마다의 잣대와 통찰로 머릿속에서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겠지만.


 나는 '나'라는 사람을 타인들이 어떻게 적나라하게 묘사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쓰는 글에서 또 내가 어떻게 보일지도 두렵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뭐 그렇다. 작가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지만 작년부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임에서 출판 쪽에서 일하시는 청년분에게 이동 중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껐다 켰다 하신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근데 너무 좋았던 건 2주 전 리더십개발 강의 중에 이런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소스를 만났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을 교수님이 강의 PPT에 넣어서 소개해준 것이다!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창작,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고민들과 생각의 바람직한 방향들을 제시해 주는 책이다. 시험 끝나고 읽었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당장 나만 해도 아니니까) 그냥 살아가는데도 적용되는 이야기라 좋았다. 특히 책이 얇아서 좋았다.   


 그 책의 영향으로 이 글을 쓸 때도 그냥 이런저런 배려나 계산보다 쓰고 싶은 대로 써야겠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아마 내 무의식적인 오리엔테이션이 처음부터 그쪽으로 가있었을 거고 드디어 합당한 구실을 하나 찾았나 보다. 좋은 글을 쓰려는 노력은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노력 축에 드는 걸까. 죄스럽긴 하다. 비루한 글이지만 기꺼이 읽어주시고, 하트도 꼬박꼬박 눌러주시는 분들까지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불친절해졌다.'의 하나의 연장인 것 같기도 하다.


 아. 또 하나 생각났다. 서울페스타 행사 중에 작년에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 참여한 청년이 좀 필요한 게 있었나 보다. 언론에 노출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연락받고 나름대로 고민해서 결정하려고 했는데(혹시 옛날 불알친구들이 알아보고 연락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감당할 수 있나?) 선생님이 "오늘까지 말해주셔야 된다."라고 하셨다. 그때가 네시 반쯤이었던 거 같고 그래도 쌤이 야근은 안 하셨으면 하니까 6시 전에는 결정해야 되는 건데 그러면 사실 시간이 없는 거라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그 당혹감이, 선택의 순간을 갑작스럽게 건네오는 손길에 대한 서운함으로 변했다. 어쨌든 결정은 해야 하고 거절은 못할 것 같으니, 기댈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미 참여가 정해진 청년은 누가 있는지 물어봤다. 두 명이 있었고 그 구성이 좋아서 오랜만에 얼굴 볼 겸 "할게요." 했다.


 다른 분들과 얘길 해보니 그래도 연락을 받은 게 서운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맞다. 그렇기도 하네.      



 일상-1. 에어컨

 오늘 수업 듣고 잠깐 기숙사에 들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데 꼭대기 빨간 발판의 접이식 사다리와 공구가 정수기 옆에 기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지나쳐서 복도로 들어서는데 현관문들이 열려있는 방이 많았다.


'아, 에어컨 고치러 왔나?'


 저번 학기에 살 때는 멀쩡히 돌아가던 에어컨이 작동이 안 되길래 얼마 전 기숙사 홈페이지에 시설 고장 접수를 했다. 게시판을 보니 우리 방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필터청소를 하고 뭘 잘못 끼워서 문제인가 싶어서 초조했는데 그건 아닌 걸 알게 돼서 마음이 놓였다. 방재실 직원분이 봐주러 왔을 때도 이 얘기를 했더니


"아, 원래 그런 경우가 있어요. 학생 잘못은 아니에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을 해주셨다. 안도감을 느끼는 나를 보고 내가 뭔가 답답하고 불안했었구나 생각했다.


 일상-2. Delayed Onset Muscle Soreness 

 안 하던 운동을 새롭게 하고 나니 돔스가 찾아왔다. 저번 학기 건강과 웰니스 할 때 들었던 내용이랑 어쩜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배우는 재미는 이럴 때 있다. 근육통이 운동 후 하루 지나서 나타나더니 나타난 후 이틀 지나서 사라졌다.


 일상-3. 마케팅 전략 시험 결과

 교수님이 어제 수업시간 시작할 때에 바로 채점한 시험지를 보여주셨다. 나는 96점 나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게 나와서 기분이 좋았고 운이 좀 따라준 편이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결과를 얻으니까 기쁨이 더 컸다. 그리고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 결과를 보니 시험이 객관적으로 어려운 게 맞았는데, 다 맞은 학생이 한 명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공부를 할까?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실없는 생각을 했다.

기쁨의 순간을 찍어서 남겼다. 교수님 목소리도 멋있으시고 시험 날 슈트 입으셨을 때 멋있으셨는데

+ 마케팅 전략 수업에 정이 안 갔던 이유를 하나 더 깨달았다. PPT 배경이랑 폰트!

기말 범위가 시작되면서 조교가 바뀌었는지 PPT 스타일이 달라졌는데 학습 의욕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중간시험 성적이 잘 나와서 추가로 동기부여도 된다. 아, 이러면 할 맛 나지 하는 느낌.

 



일상-4. 공구한 보드 도착

 

 학생회관 입구는 원래 찾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저번에 한번 구경 가보려다가 입구를 못 찾아서 못 갔다. 며칠 전 밤에 산책하다가 개인적 미답 구역인 음대 계단을 한번 올라가 봤는데 그 옆에서 입구를 발견했다. 무슨 던전입구 찾냐고.


 이때 입구를 찾아놓은 덕분에 보드 찾으러 동아리실에 가야 할 때 번거로운 수고 없이 바로 갈 수 있었다. 중앙동아리 동방들은 뭔가 진짜 시트콤이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전형적인 동방 분위기였다. 학생회관 자체가 전형적인 진취적인 학생들의 활기찬 대학생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부러웠다. 제 때, 그걸 놓치지 않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밤에 캠퍼스에서 보드 탈만한 곳에 가서 타봤다. 구석까지 가면 살짝 경사가 있어서 거기서 탔다. 맨홀 뚜껑에 "서울특별시" 글씨는 뭔데 귀엽지. 뜬금없이 귀여워서 찍었다.


일상-5. 놀이터

 실제로 놀만한 곳은 아닌 거 같은데, 러시아케이크를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가봤을 때 딱, 도착해서 '놀이터'라는 느낌이 왔다. 임페리아 마트도 그렇고 러시아케이크로 가는 골목에 있는 이름은 모르는 마트도 그렇고 너무 재밌는 게 많았다. 재밌으면 놀이터지 뭐.


 첫 방문 때, 점심쯤 혼자 러시아케이크나 크레페를 먹으면서 맞은편에 보이는 케밥 집, 왼편에 스타사마르칸트까지 빠른 시일 내에 또 와서 먹으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생각보다 좀 더 걸렸지만 혼자 갔던 곳에 함께 다시 오니 좋았다.   

 

 직전 글에는 스타사마르칸트에서 세 명이서 먹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일정이 안 맞아 같이 못 갔던 청년이랑 갔다. 다음 주에 같이 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었는데 내가 원하는 걸 참고 맞춰주다가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슬슬 알게 됐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려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신 다음 주에 한 번 더, 또 가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그분이 말했던 "다음 주"가 되었기 때문에 카톡을 해서 일사천리로 약속을 잡았다. 거리에 도착해서 어디 갈까 어디 갈까 둘러보고 검색을 하다가 케밥을 먹었다. 커플 세트였나 뭐 그런 걸 먹었는데 양고기케밥이랑 닭고기케밥이었다. 맛있었다.


  아, 그리고 정수기 위에 수입 얼그레이 티백이 있는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정말 사소한 것인데 뭔가 더 인정 넘치는, 다정한 느낌을 받았다. 체험적 몰입도도 높여주고 재밌기도 했다. 매장 정리는 좀 잘해야 될 것 같긴 해보이던데. 티는 직원용 아니냐고,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확인해보고 마셨는데 냄새를 맡았을 때 일반적으로 먹어본 얼그레이에서 느껴본 적 없는 생강향 같은 자극적인 향이 났다.


 동갑내기 청년. 센터 활동할 때 사실 나는 이 분에 대해서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유머 코드가 일단 다르다. 활동 성향도 많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에 대해서도 편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근데 이 분은 나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고 계셨다고 한다. 그 동질감은 내면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 날 동행을 통해 그걸 느꼈다.


 모임이 아니라 둘이서 만났다 보니 상대한테 집중하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나: "요즘 그냥 낙관하고 사는 거 같아요."

청년: "낙관적인 게 객관적인 거일 수도 있어요."


아하.


하긴 소행 7장 PPT 정서확신이론 부분 슬라이드에도 나는 우울증이랑 연결시켜서 필기했었지. 안 좋은 감정일 때는 부정적인 면만 수집하고 파고든다고. 나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었다면 낙관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게 참말이다.


나: "둘이 만나니까 좋네요?"

     '뭐지 이상하다? 좀 어색할 줄 알았는데'

청년: "디뇽님 진지한 스타일이니까. 둘만 있으면 진지한 이야기하기 좋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요."


나보다 나를 잘 아네. 그래서 좋은 거였구나. 어떤 사람은 자꾸 자기가 사람 잘 본다면서 나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틀리는 말만 해대서 사람 억울하고 불편하게 만들더니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그게 온화하고, 맞을 때는 도움이 된다.


그리고 사람들한테서 나에 대한 피드백을 좀 받고 싶은데 생각보다 그런 일이 안 생긴다고 했더니 그런 얘기하는 게 더 어려우니까. 하고 이해시켜 줬다. 맞아 칭찬보다 흠잡는 얘기하는 게 더 고통이지.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었네. 반성했다.


그래도 아무도 안 해줘서 속상할까 봐 본인이 총대 메고 한마디 해줬다. "오해하실까 봐 이야기하기 부담스럽지만"이라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고.


실제로 자유롭지 못한데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속박을 벗기 위해서 애쓰는 거 같아 보인다고.


내가 요즘 이것저것 많이 하니까 그 부분을 이야기할 때 저렇게 얘기해 줬다. 맞는 얘기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은 내 갈망, 욕심, 어쩌면 억지나 떼쓰기일 수도 있는 것을 잘 짚어줬다. 고마웠다. 왤까? 저런 얘기를 듣고 싶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나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그래도 한 가지 분명히 할 게 있다면, 지금 내가 하는 것들은 자유로운 삶의 흉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어릴 적 열망과 원래의 내 모습, 내가 본디 좋아하던 것들에서 나온 것이니 그 부분은 혼동하지 말자 생각한다. 욕심 때문에 여기서 더 무리하게 벌리지 않고 차분하게, 천천히 가자고 상기할 수 있게 해주는 말을 들었다.

배울점이 정말 많다. 그리고 난 배울점이 있는 사람이랑 있는 것이 좋다.

 임페리아 마트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먹고 싶었던 빵. 올 때마다 돈을 많이 썼으니 두 번을 참았다가 이번에 먹었다. 처음으로 자세히 봤더니 꿀생강빵이라고 적혀있었다. 처음 외관만 봤을 때부터 자동정보처리로 먹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이후에 들어온 제품의 속성은 내 구매의사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사서 나와서 포장을 까서 빵을 하나씩 꺼내 먹었다. 퍽퍽했다. 그리고 난 퍽퍽한 걸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동갑 청년은 홍차랑 먹기 좋다며 취향저격이라고 했다. 내가 고른 거니 그렇다면 잘됐다.


 스타벅스로 가서 뭘 좀 마셨다. 청년은 차이티라떼, 난 딸기라떼. 내 머릿속 차이티라떼라는 제품의 관계네트워크는 판다청년에 전속되어 있는 것이었어서 두 번째였다. 그리고 청년이 차이티라떼를 주문하는 순간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는데 이유가 몇 개 있다. 판다 청년과 내 동갑 청년, 이 두 사람이 대학 동문인 인연이 있다는 것, 모임에서 유일하게 파이 소수점을 알고 있던(난 이게 좀 재밌었다.) 이공계 듀오라는 점이 그 이유다. 게임 취향도 비슷한 것 같고, 두 사람 다 내가 부러워하는 특정 모습을 가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은 어쩌면 통제사회 아포칼립스마냥 진짜 분류가 가능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다.    


 스타벅스에서 근황 이야기도 하다가 슬슬 헤어질 때쯤이라고 느껴졌다. 가방에 넣어서 가지고 온 내가 만든 비스코티를 꺼냈다. '내가 만든 쿠키~' 속으로 뉴진스 노래를 불렀다. 아저씨가 된 나, 귀엽다.


 조금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원데이클래스에서 로봇처럼 자유의사 없이 입력값대로 만든 쿠키라서 '내가 만들어서 더 보람 있는'은 애매했지만. 그리고 비스코티는 원래 본가에 들고 갔던 분량에서 모임 중 생일인 청년 주려고 몇 개를 다시 챙겨온 거였다. 근데 생일자가 비건 지향이기도 하고, 이 날 만나는 청년이 나처럼 디저트에 환장하는 청년인 걸 알게 됐기 때문에 내정했던 주인을 바꿨다. 생일자에게는 다른 뭔가여도 괜찮겠지. 더 적절한 주인을 찾아갔다 싶다.



 헤어지고 지하철로 돌아가면서 <불교와 정신분석학> 수업에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미워하는 그 사람의 모습에 나의 미운 모습이 똑같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미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청년의 일면에서 뭔가 불편했다면 그건 그 청년 속에서 나랑 비슷한 모습을 무의식이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네. 언제나 무의식이 한참을 앞서간다.


 기숙사로 가면서 뭐 때문인지, 1:1이었기 때문인지, 이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둘 다 던지) 아니면 뭐 동성이어서 그랬나?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좋았다. 마음이 다른 경우들보다 좀 더 편안했다. 7시에 만나서 9시에 헤어져서 그런가? 웃음이 나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근로자의 날. 수업은 당연히 뭐 똑같이 하지만 유치원이 휴일이다. 그래서 오후에 출근을 안 했다.

와, 오후가 있는 삶? 이렇게 좋다고? 여유롭게 글을 쓰면서 오늘 오후와 저녁을 보냈다. 여전히 글도 못 쓰고 오래 걸리고. 오래 걸리니까 한 번 쓰려는데 날을 잡아서 하게 되고. 날을 잡아서 하게 되니 한 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넣게 되고. 그러니까 주제도 맥락도 일관성이 없고 가독성도 없고.   

그런데도 이 글을 쓰고 고치고 사진도 옮겨 넣고 발행하기까지 5시간 넘게 걸렸다면 읽는 분들이 믿어줄까. 나도 어이가 없다. 효율적인 방법 찾아야 한다.

 

 하다 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가 이렇게도 해보고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저렇게도 해보고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많이 하다보면 잘해지겠지. 인생은 뭐든 그런 거라니까. 그래도 이런 글이라도 쓰다보니까 글쓰는 과제할 때도 한결 수월했잖아. 머릿속에 남아있던 전에 썼던 내용들로 요긴하게 재탕도 해서 먹고.


욕심내지말고 그냥 하면서 가자. 일단. 부수적으로 하는 거잖아 이거는.


그나저나 레몬 화분 속에서 한번 올라와서 존재감을 드러냈다가 다시 기어들어간 민달팽이는 살았나, 죽어서 거름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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