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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un 26. 2024

난 글렀어 먼저 가..

힘들어, 억울해, 슬퍼

 룸메가 나가서 방학 중 입사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당분간 1인실이다. 쾌적해서 참 좋다. 룸메는 내 침대와 본인의 침대 사이 공간에 건조대를 놓고 빨래를 걷어서 개지 않고 그대로 걸어놓은 채 옷장으로 사용했다. 그 덕에 방 안에 늘 좋은 섬유유연제 향기가 가득 찼었지만 물리적으로도 가득 찼었다. 건조대가 사라진 것은 크다. 룸메가 남기고 간 건조대를 접어서 책상과 벽 사이 공간에 집어넣고 나니 청소를 하기도 편해져서 룸메가 나간 다음 날 방바닥을 쓸고 닦고, 화장실, 샤워실까지 청소하면서 나름 대청소를 했다. 미뤘던 책상, 옷장 정리도 했다. 기분이 좋았는데.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하나만 빼고 거의 모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마저도 잘한 건지 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그 사람이 대체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모르겠는데 그걸 본 순간 그냥 나까지 울고 싶어졌다. 그 표정이 마음의 어느 샘에서 길어진 것인지 나로선 짐작해 볼 수도 없었지만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마음이 아파온 것만이 분명했다.


 유치원 9 to 6가 시작되었다. 학기 중에는 공강일 때 3시간, 1시간 반, 5시간씩 깔짝 근무했다. 4개월 만에 9 to 6를 하니 새삼스레 정말 내 시간이 없구나 싶다. 1시간 동안 밥 먹고 잠깐 숨 돌리면 다시 근무지로 돌아가야 하고, 퇴근하고 씻고 밥 먹으면 자야 된다. 겨울 방학 근무 당시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까먹고 있다가 다시 겪으니 가히 충격스럽다. 다들 이렇게 산다니. 인간의 행복은 여가에서 나온다는 것이 참말이다.    


 A와 오랜만에 밥을 같이 먹었다. A는 썸의 결말이 실패로 끝나(어느 글에 관련된 내용을 남겼었는지 찾을 단서가 없다)  큰 상심과 분노에 빠진 상태로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싶다 했다. 재해석의 4가지 방법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공감과 위로, 응원의 말이 다했을 때쯤에는 그거라도 덧붙여야 했다. 밥을 다 먹고 나온 후에는 마지막으로 횡단보도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주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헤어졌다. 힘내라. 임마 나도 내 코가 석자다. 넉자 정도 될지도.


 운동장에서 기숙사 건물을 바라봤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몽땅 열어놓은 것이 보였다. 저 창가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겠지. 착잡했다. 졸업할 때까지는 어떻게 기숙사 생활을 계속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지금처럼 식물을 죽이지 않고 키울 수 있는 공간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뭐, 일단은 저 창문들 안 쪽의 어느 방에서는 토끼도 산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지개센터에서 받은 웰컴키트에 들어있던 모루인형 키트로 조금 전에 만들었다. 키트 마트료시카인가. 외롭고, 고독하고 슬픈데 억울한 일까지 당했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스픽도 하지 않고 돈키호테도 건드리지 않고 저걸 만들었다.


 걱정과 우울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병원 환자들 마냥 앞사람 차례가 끝나기만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자리가 비면 금세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 얄미운 것들. 얼마 간의 편안함과 행복을 그래도 만끽했던 것 같다. 보내주자 이제.


 인생에서는 쪽을 판 값으로 배움을 사는 것이고, 쪽을 팔아 모은 한 밑천으로 어떤 무대에 오를 자격을 사는 것 같다. 내 글은 쪽팔리다. 이걸 팔아서 뭐라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 며칠 전 산책할 때 남겨 놓은 새소리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내 글을 보셨는지, 발견했는지 의문인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어서 새소리를 담았습니다. 기분 좋아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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