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넝마주이
제 아버님을 찾아내셨는지요?
생필품 배급소를 배경으로 줄지어 선 광부들 사진을 눈으로 더듬는 권소운에게 낯선 청년이 다가왔다. 서른쯤 됐을까, 자신이 편지를 보낸 추달호의 아들 추성영임을 밝힌 청년은,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마치 날마다 얼굴 보는 동네 사람 대하듯 스스럼없이 굴었다. 아버님은? 하고 권소운이 추달호의 행방을 궁금해하자, 천천히 뵙기로 하지요, 청년은 바쁠 것 없다는 말투였다.
아차, 북면에선 보채선 안 되지. 커피잔을 입술에 댔다 뗀 권소운은, 갱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광부들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혹시 이 사람들이 추달호 씨 동료들인지를 물었다. 청년의 말마따나, 추달호의 달라진 모습을 상상하며 사진 속 인물들을 열심히 뒤지던 터였다. 얼굴을 알아볼까, 얼마나 늙었을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기다리는 동안 생각이 많았다. 먼저 사죄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진작 찾아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규율부장을 혼찌검 낸 당신의 행동은 용감했다고, 그리고 날 위해서 나서준 거 고맙다고 말이다.
아, 이건 육십 년대 풍경이구요. 좀 있다 자리를 옮기기로 하지요. 제 아버님은 다른 곳에서 기다….
짐작대로 그럼 탄 캐는 일을 하셨나보군요. 추성영의 말을 자르며 권소운은 선뜻 넘겨짚었다. 실례를 무릅쓰더라도, 앞에 앉은 젊은이가 추달호의 아들인지, 그리고 자신을 북면으로 부른 사람이 넝마주이 추달호가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했음에도 마음이 내딛는 데야 어찌하랴. 혹시, 북면에 들어오기 전 아버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진 알고 있소?
머리 크고 나서 가끔 들었습니다. 추성영이 말했다. 넝마주이 일을 하셨더라구요. 저야,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넝마주이라.
권소운은 추성영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길에서 쓸만한 고물이나 종이를 줍는 넝마주이를 젊은 추성영이 알 턱이 없었다. 삼십여 년 전엔, 신문기자 권소운도 그들을 골목길에서 더러 마주치긴 했어도, 거지나 진배없는 그들과 함께 지내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으니까. 이제껏 살아오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밑바닥 삶’이었으니까. 하나같이 무지한데다, 아무 데서나 싸움질하고 욕지거리 내뱉는 더러운 하층민들.
한 달 남짓한 넝마주이 생활이었지만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짐승 같은 인간들 속에서 무슨 수로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짧은 넝마주이 생활에서 별별 거지발싸개 같은 놈들을 다 만났다. 그중에서 추달호가 눈엣가시로 여긴 규율부장은 막돼먹은 인간의 본보기랄까. 추달호도 그렇지만 규율부장은 신문기자 권소운이 난생처음 겪는 인간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자기가 아는 한 가장 악질이랄까. 비 오는 날 아버지뻘인 노인을 몽둥이 찜질한 규율부장은 지금도 안 잊힌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규율부장 손에 걸려든 것은 공사판에서 철근 토막을 훔쳐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버린 것을 주웠을 뿐이라고 우겼지만, 규율부장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공사판 쪽에서 철근 도둑을 잡아내라고 넝마주이 합숙소에 연락이 온 것이었다. 무엇을 훔치든 들통이 안 나면 다행이지만 도둑질만큼은 철저히 범인을 가려냈다. 경찰에서 아는 날에는 넝마주이 합숙소 전체가 시달림을 당하는 터였다. 규율부장은 경찰이 알기 전에 손을 써야 했고. 훔친 철근을 돌려주는 것으로 공사판과 입을 맞춘 규율부장은 노인을 가만두지 않았다.
-엎드려!
규율부장의 외마디에 노인은 진흙탕에 엉거주춤하니 손을 짚고 두 다리를 뻗었다.
-경찰이 알았다간 줄줄이 쇠고랑 찬다는 거 몰라!
규율부장은 합숙소 식구들을 굶겨 죽일 작정이냐고, 노인에게 몽둥이질해댔다. 무슨 일만 터지면 넝마주이들부터 닦달하고 보는 경찰 생리를 잘 아는 동료 넝마주이들은 규율부장의 폭력 행사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두어 대나 맞았을까, 흙탕물을 뒤집어쓴 노인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한 번만 봐달라고, 죽어도 안 훔치겠다고.
그날, 권소운은 추달호가 규율부장을 증오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저 새낀 사람 새끼가 아냐.
아버지 추달호의 전직이 넝마주이임을 밝히고도 추성영은 부끄러워하거나 남우세스레 여기지 않았다. 추성영은 추달호의 아들이 틀림없었다. 권소운은, 추달호가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와 광부 일을 하게 됐는지 무척 궁금했다. 편지에 썼듯, 추달호는 가족사진을 전해주려고 보자고 했는지 몰라도, 사실 권소운은 가족사진에 대해선 별다른 애착이 없었다. 그보다는 묻고 싶었다. 왜 칼을 휘둘렀는지?
당신과 무관한 인간을 위해 말이다. 규율부장은 무지막지한 폭력을 일삼는 개망나니였다. 목숨줄을 틀어쥔 규율부장 앞에선 넝마주이들은 다들 설설 기었다. 규율부장의 명령을 어겼다간 합숙소에서 쫓겨나는 거였다. 그것은 곧 하루아침에 먹고 잘 데가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그에게 대든다거나 칼을 들고 설친다는 건 거리에서 굶어 죽을 각오를 하지 않은 바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소운은 합숙소에 머무는 동안, 규율부장에게 항의하는 놈 하나 보지 못했다.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칼질은커녕 주먹을 내지르는 놈도 없었다. 칼부림 사태를 아들인 추성영에게 물어볼 수는 없을 터. 그것만은 추달호에게 직접 알아봐야 했다.
추달호는 그 뒤로 원 없이 사진을 찍었을까? 권소운은, 그가 오랜 세월 사진을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 잘난 가족사진, 나한텐 휴지나 다름없소, 라고 함부로 지껄일 수는 없었다. 추달호의 속내를 짚어보려고 무진 애를 써봐도 도통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휴대전화로 껌 씹기보다 쉽게 아무 데서나 사진을 찍는 세상이 아닌가. 서류나 인물도 휴대전화로 찍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타인에게 보낼 수 있지 않나.
추달호는 왜 그걸 굳이 직접 전해주고 싶어 한 걸까. 가족사진보다는, 얼굴을 보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한다는 걸 알면서도 권소운은, 바로 그 점이, 넝마주이와 햇병아리 기자로 어울렸던, 그 짧은 젊은 날을 불러내는 일이 서로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추달호와 대면했을 때 닥칠 낯섦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좋을 인연이 아닌가 했다가도, 추달호의 칼부림이 턱 막아서면, 세월을 버텨낸 사건의 주인공을 어물쩍 넘기면 더 큰 후회를 불러올까 두려웠다.
추달호를 외면하고 심장에 들어 앉힐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지나간 삶을 곰곰이 뒤져보아도 자기를 위해 그토록 위험을 무릅쓴 인물이 없었음을 권소운은 인정하는 터였다. 그래서 추달호가 기억 창고에서 지워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동료 교수들, 헤어진 아내, 공적 사적으로 이런저런 일들로 엮였던 사람들, 교류가 끊어진 친구들…. 삶을 관통한 숱한 이들을 물리치고 추달호가 맴도는 까닭이, 권소운과 동류인 인간들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오로지 그의 무모한 행동에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넝마주이 추달호는 가족사진을 별스레 좋아했다. 사회부 선배 기자를 통해 합숙소에 숨어들자마자 넝마주이 일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준 이도 추달호였다. 어느 날, 아내와 돌 지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엿본 그는 한 번만 보여달라고 매달렸고, 눈으로 사진을 핥듯이 보고 또 보았다. 자기는 머리털 나고 사진 찍어본 적이 없다고, 같이 사진 찍을 사람도 찍어줄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고, 추달호는 털어놓았다. 후회한다, 그때 빈말이라도 언제 나하고 함께 사진 한 방 찍자고 말하지 못했음을.
한창 신혼인 수습기자 권소운은 딸애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틈만 나면 품에서 꺼낸 사진을 손에 쥐었고, 그것을 본 추달호는 부러움이 찐득찐득한 눈으로 가족사진을 탐했고. 추달호가 어쩌다 넝마주이가 됐는지는 감히 알아낼 생각을 못 했다. 시국 사건으로 피신한 몸으로는, 아무리 선배 기자가 추천한 추달호일지라도 그의 개인사를 넘볼 만큼 강심장이 못 되었다. 넝마주이로 겨우겨우 풀칠하는 처지임에도 가족사진에 홀딱 빠진 추달호를 헤아릴 여유가 권소운에겐 없었다. 그놈 참 별종이네, 하고 데면데면 넘겼을 뿐.
사람 새끼도 아니라고 규율부장을 씹어뱉은 추달호가 그 작자를 칼로 찌른 것은 눈이 내린 아침이었다. 규율부장 호루라기 소리에 쫓겨 밖으로 나오자 눈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목장갑 낀 손에 입김을 불며 어깨를 펴봐도 밤새 추위에 웅크렸던 몸은 찌뿌드드했다. 빵모자나 개털 모자를 눌러쓴 사람들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어슬렁거리며 아침을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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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은 허탕 칠 게 뻔해. 뜨끈한 아랫목에서 쐬주나 한잔 빨았으면 좋겠구먼.
제자리에서 종종걸음을 치며 시시덕대는 이들의 불평이 아니더라도, 굶을 각오만 단단히 한다면 추렁이고 집게고 다 팽개치고, 연탄 화덕이라도 끌어안고 하루를 때우고 싶은 날이었다. 신출내기 넝마주이 권소운도 알았다. 비가 추적거리거나 눈이 내린 날은 다리품만 팔았지, 밥값도 못한다는 것을. 산을 덮는 눈이 쓰레기라고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운 좋게 양은 조각이라도 걸리면 모를까, 눈길을 싸돌아다녀도 등짝만 욱신거릴 터였다. 눈을 먹은 쓰레기가 돌덩이처럼 얼었더라도 그건 나중 일이었다.
우선 밥을 먹어야 했다. 추위에 떨었던 터라, 넝마주이 시늉하기에 급급한 권소운으로서도 국솥에서 솟아 허공으로 번지는 허연 김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쓰레기통 뒤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넝마주이가 다 된 듯 구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울 따름이었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더라도 추렁을 매고서는 번듯한 식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식당 문턱을 넘기도 전에 쫓겨나기 일쑤였다. 추달호와 동행 길에 추렁을 벗어던지고 그와 순대국밥을 먹고 싶어 얼마나 안달했던가. 경찰에 쫓기는 신세임을 잊을 만큼 순대국밥의 유혹은 강렬했다. 혹시나 했지만, 꽁보리밥에 소금에 버무린 김치와 소금만 친 멀건 우거짓국이었다. 생선 뼈다귀라도 씹으면 좋으련만, 코끝을 당기는 국 냄새만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권소운이 규율부장의 눈 밖에 난 건 꽁보리밥을 소금국에 말아 먹고 나서였다.
-어라? 꼴에 이빨까지 닦으셔?
규율부장이 칫솔로 이를 닦는 권소운의 옆구리를 몽둥이로 쿡쿡 찔렀다. 권소운은 헛구역질하며 다급하게 입안에 든 치약 거품을 토해냈다.
-내 경고했지. 여기 계신 분들이 밥맛이 떨어진다고, 신성한 아침 식사 시간엔 이빨 닦지 말라고 했잖아.
규율부장은 몽둥이로 줄을 선 사람들을 죽 가리키며 권소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눈밭에 뒹굴면서도 권소운은 칫솔을 주머니에 감추려고 부리나케 앞섶을 풀어 헤쳤다. 피신이고 나발이고, 야 이 새끼야, 나, 넝마주이 아냐. 기자야, 신문기자, 하고 기자 신분증을 턱 내보이고 규율부장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참아야 했다. 신분을 밝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경찰과 정보부 수사관들에게 안 잡히려면 꼼짝없이 넝마주이로 숨어 지내야 했다. 신문기자가 아니라 도피 중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안경잽이, 너 같은 새끼는 본때를 보여줘야 해!
규율부장의 군화 뒤축에 연거푸 가슴을 찍히고도 권소운은 신음을 토하며 눈밭을 기었다.
-이건 또 뭐야?
한창 열을 내던 규율부장이 권소운의 품에서 떨어진 사진을 집어 들었다. 권소운은 가슴을 움켜쥐었던 손으로 사진을 돌려달라고 사정했다.
-꼴에 마누라 낯짝은 반반하게 생겼는데.
규율부장은 권소운을 뿌리치며 음흉스레 킬킬거렸다.
-그만 돌려주시지.
그때 숨죽인 사람들을 뚫고 우악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밥그릇과 국그릇을 손에 쥔 추달호가 식사 대기 대열에서 빠져나와 규율부장 앞에 섰다.
-얼씨구, 이건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야. 그렇지 않아도 손 봐줄 참이었는데, 너 오늘 잘 걸렸어.
권소운의 가족사진을 내팽개친 규율부장이 추달호의 배를 발길질로 내질렀다. 그릇이 눈밭에 나뒹굴었다. 국물을 뒤집어쓴 추달호는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느릿느릿 일어났다. 눈 깜짝할 새였다. 칼을 빼든 그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규율부장을 찔렀다. 누가 나서서 말릴 틈도 없었다. 비명을 지른 규율부장이 무릎을 꿇고 나자빠졌다. 추달호의 칼이 규율부장의 넓적다리를 찍은 것이었다. 화톳불에 드러난 하얀 눈밭에 점점이 흩어진 핏자국이 선명했다. 권소운이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 와중에도 사진을 집어 들고 내빼는 추달호를 권소운은 멍하니 바라만 보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