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베 Aug 24. 2024

감옥의 안과 밖

자수는 안 한다

“추모제가 얼마 안 남았네요.” 

고상필이 찻잔에 손을 대며 말했다. 명성기업 취재에 도움을 줄 사람들 명단을 내게 전해주고 나서였다. 나른한 빌리 할리데이 목소리가 잦아들자 커피숍에는 ‘조앤 바에즈’와 ‘마르세데스 소사’의 ‘인생이여 고마워요’, 이중창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더는 설명을 달지 않았다. 나도 누구 기일이냐고 묻지 않았고. 고상필과 나에게 추모제란 분신한 지회장을 뜻했다. 나는 날짜를 따져보았다. 오늘이 9월 15일이니, 지회장 기일이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세상을 뜬 날이 내 생일과 같은 날이어서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평전 작업을 하면서 지회장이 죽은 날을 확인한 나는 기묘한 인연에 탄식했다. 얄궂은 운명이랄까, 하필이면 내가 태어난 날 죽은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다니. 죽은 자의 인생을 되살리기란 망자와 한 몸으로 살기임을 여지없이 실감하는 나날이었다. 작업실 골방에서 한 해를 꼬박 그와 뒹굴고 나자 지회장의 불탔던 육체와 심장이 비로소 펄떡펄떡 뛰었다. 꿈이 안 잊힌다. 그는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았을까. 불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억울한 죽음은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활활 타는 팔다리를 휘저으며 살려달라고, 조합원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아내와 아이들과 한 번만 밥을 먹고 싶다고, 떼를 썼다. 


나는 그때마다 소원을 들어주겠노라고, 불꽃으로 뚝뚝 떨어지는 피눈물을 닦아주며 그를 다독였다. 그가 내 영혼에 옮겨온 날, 한낱 화염 덩이에 불과했던 그는 지회장으로, 아이들 아빠로, 가장으로, 온전히 부활했다. 그는 분신하기 이틀 전, 초등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지상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일 학년 삼 학년인 아이들과 오락실에서 게임을 했다. 아비로서 그는 자장면을 사 먹이고 게임을 하면서 자식들과 작별했다. 이틀 뒤에 휘발유를 머리에 붓고 제 몸을 불사르려는 인간이 말이다. 


“이번엔 흉상 제막식도 하려구요. 추모제에 맞추느라 조각가가 고생깨나 했어요. 흉상을 제작하기로 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는데도 애를 많이 먹었죠. 근데 막상 완성된 작품을 보고 조합원들이 엄청 좋아하더라구요. 무덤만 덜렁 있는 것보다 지회장님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투쟁할 때 생각도 나고, 다들 감회가 각별한 것 같더라구요. 무엇보다 흩어진 조합원들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해낼 것 같아서 일벌이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상필은 연락이 닿는 조합원들이 힘을 모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조합원들이란, 지금은 쫓겨난, 성진테크에서 일했던 동료들을 뜻했다. 구사대에 붙었던 이들은 여전히 근무하지만, 노조 투쟁에 참여했던 이들은 대부분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지회장의 얼굴 사진을 떠올렸다. 고상필은 가로 이십 센티 세로 삼십 센티쯤 되는 작은 흉상이라고, 이번에는 여느 해보다 행사가 좀 더 커질 거라고 덧붙였다. 


고상필은 추모제를 중심축으로 한 해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성진테크 출신 조합원 중에서도 고상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친구였다. 지회장 평전 작업을 추진했던 것도 고상필이었다. 이번 추모제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도피 중인 수배자 신분에도 그는 흉상 제작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분신한 지회장에 관한 한 고상필은 그보다 더 한 일도 해낼 거였다. 죽는 날까지 가슴에 평생 품고 가야 할 사람, 고상필에게 분신한 지회장은 그런 존재였다. 고상필이 지회장 죽음에 대해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한 책임을 들씌웠는지, 나는 취재 과정에서 알았다. 지회장은 빚에 쪼들려 돈을 벌려고 나이 마흔둘에 성진테크(자동차 보닛을 생산하는 H 자동차 하청공장)에 입사했다. 그는 한때 낚싯대 공장을 운영했고, 회사가 망하자 경품 오락실에서 슬롯머신에 빠져 돈을 날리기도 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두루 맛본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 평범한 사내가 부당한 노동 현실에 눈뜨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상필은 자신이 한 역할을 떨쳐버리지 못할 거였다. 한 인간의 죽음에 잇닿은 한, 그것은 단순한 부채감이랄 수 없었다. ‘지회장이 죽음에 이르는 데 알게 모르게 거든 건 아닐까?’ 짐작이지만 고상필은 자신에게 그와 엇비슷한 물음을 숱하게 던졌으리라. 직업혁명가 고상필에게 지회장 죽음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안고 갈 회한 덩이일 터였다. 분신 죽음이 고상필에게 다른 인생을 살 수 없도록 족쇄로 작용하고 있으리라는 판단은, 너무 섣부른 것일까. 


“상필아, 너 담당 있잖아. 일전에 말했던 수색영장 들고왔던 권 형사라고. 그 작자가 ⌜불꽃 영혼⌟을 읽었더라니까.”

“그래요? 요새 형사들은 시간이 남아도나? 형사치고는 별난 친구네요. 하긴 노동운동 담당 형사라면 그 정도 공부는 해야죠. 아주 바람직하네요. 그건 그렇고 책은 읽으면서 여긴 왜 안 덮칠까? 아파트까지 털었으면서.” 

고상필이 출입문 쪽을 두리번거리며 덤덤히 말했다. 권 형사가 들이닥쳐 체포한다 해도 상관없다는 투로 들렸다. 


고상필과 약속 장소를 정하는 데도 권 형사를 따돌리기를 먼저 생각했다. 날짜도 장소도 여러 차례 바꾼 뒤에야 겨우 얼굴을 맞댈 수 있었다. 권 형사가 따라붙을까 봐, 지레 신경이 곤두서 버스를 일부러 두어 차례 갈아타고 도착한 카페였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서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상필과 만난 카페는 내가 한창 취재 중인 명성기업과 가까웠다. 말은 안 했지만, 고상필은 그즈음 명성기업 노동자들을 뻔질나게 만나는 눈치였고. 만약에 권 형사가 그 사실을 알아챘다면 얼마든지 O 시 호숫가 카페에 발걸음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가 나를 미행했다면 고상필은 꼼짝없이 잡힐 판이었다. 나 때문에 직업혁명가 고상필이 체포되는 불상사가 벌어져서는 안 되었다.


“걱정 마세요. 제 발로 걸어서는 감옥에 안 갈 거니까.” 내 눈치를 살핀 고상필이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님은 아파트에서 계속 작업하세요, 다른 데 신경 쓰지 마시고. 설쯤 해서 집에 들어갈까, 머리 굴리고 있어요. 변호사하고도 얘기해 놨고. 집에 있으면 형사들이 알아서 잡으러 올 거예요. 체포되면 체포됐지, 자수는 안 할 거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감옥의 안과 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