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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업본부장 한상봉 Nov 13. 2023

영업사원 봉팀장의 하루-제7화 MZ여자 영업사원 2

영업사원 생존소설

오랜만에 가본 대학캠퍼스는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때와 건물이나 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다니던 사람들의 옷차림이 변했을 것이고 변한 옷차림을 입은 젊은 친구들의 생각과 생활은 많이 변했을 것이다.


졸업은 똑같이 축하받아야 할 일이지만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들과 아닌 친구들의 마음과 웃음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봐서인가?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찍는 우리 팀 막내 지원 씨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팀장님, 여기까지 와주시고 감사드려요. 엄마 우리 팀 팀장님이셔."

"아이고 팀장님 감사합니다. 우리 지원이 서툴러도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이거 어느 영화에선가 본 듯한 장면이다. 나도 부모가 되어 자식의 상사를 만나면 저러려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었는데 실사로 내가 그런 인사를 받으니 괜스레 죄송하고 부끄럽다.


"별말씀을요. 걱정 마세요. 벌써부터 일도 잘하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빈말인걸 아시겠지만 그래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신다. 저게 부모의 마음이겠구나.


몰카 연출자 여과장 : 팀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따가 저녁 팀 환영식 때 팀장님이 모른 척해주시고 가짜 선물 전달해 주시면 됩니다.

유치한 봉팀장 : 오오오.. 진짜 선물은 뭘로 준비했어? 

연출자 여과장 : 아주 이쁜 명함지갑이랑 만년필입니다. 아마 좋아할 거예요 지원 씨가.ㅎㅎ


시대가 흘러도 신입직원에게 명함지갑과 만년필은 좋은 선물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업을 해 보겠다고 용기를 낸 초보 영업사원에게 명함지갑은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 액세서리이고 앞으로 계약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만년필도 뜻깊다. 아마 좋아할 것이다.


졸업식날은 친구들과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크게 상관없다는 지원 씨의 말을 듣고 저녁에 이태원 고급 파스타 집으로 환영식을 잡았다. 여직원이어서 일부러 파스타집을 잡은 건 아니고 몰카의 성공을 위한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니 어쩌니 하는 여 과장의 열정에 두 손 든 예약이랄까. 근데 저 친구는 왜 저리 몰카에 진심인거야? 라고 생각은 했으나 나 역시 반응이 궁금한 건 같다.


봉팀장 : 지원 씨 졸업 축하해. 이제 진짜 사회인이고 직장인이네.

민지원 :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팀장님. 꽃다발도 주시고

최부장 : 부러워한 게 아니라 개 웃겨한 거 아냐? 솔직히 우리도 가면서 맞나 싶던데. 

여과장 : 맞습니다 최부장님. 제 졸업식이면 회사 상사들이 오는 거 별로였을 듯요.

민지원 : 아니에요 아니에요. 너무 감사드려요. 회사 합격한 것도 행복한데 팀에서 축하도 와주시고 너무 행복합니다.


음.. MZ 세대 신입사원들이라고 다 예능에서 보는 거 같은 건 아닌가 부다. 저렇게 이쁘게 말도 할 줄 알다니.


봉팀장 : 지원 씨의 행복에 결정타를 날릴 순간이군. 여 과장 준비한 거 있지?


박스를 받아 든 지원 씨의 얼굴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환영회를 해주는 것도 감사한데 선물까지 주신다고? 하는 표정. 내가 지시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센스 있는 팀장인 듯싶다.ㅎ


선물을 펼쳐보는 지원 씨의 표정은 나와 최부장과 여 과장 모두의 극도의 집중시간이다. 크게 와닿을 리 없는 물어보지도 않고 산 싸구려 화장품. 진짜 선물은 따로 있지만 가짜 선물을 받아 들었을 때의 순간의 실망표정이 관전포인트다.


"와 너무 감사해요. 선물도 주시고 예쁘게 아껴서 잘 바를게요. 내일 바로 바르고 올게요. 감사합니다."


놓쳤다. 단 0.1초의 실망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지원 씨의 얼굴에 몰카실패라는 커다란 네 글자가 적혀있다. 참 착하고 순수한 친구라는 생각을 한다.


봉팀장 : 지원 씨 좋아하니 고마워. 그리고 이것도 한번 열어볼래?


몰카는 실패했다. 오히려 우리가 몰카를 당한 기분이었다. 선물을 열어보고 엉엉 우는 지원 씨를 달래느라 혼났다. 꼭 받고 싶었던 선물이라면서 몇 번을 만년필 뚜껑을 열어보고 명함지갑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면서 운다. 이게 숙연해질 자리가 아닌데 괜히 몰카를 준비한 주범과 공범의 연대감으로 미안해진다. 


MZ가 틀림없지만 모든 MZ가 MZ 같은 건 아니다. MZ 같은 게 어떤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오늘 지원 씨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예의 바르고 착한 부하직원이자 같은 길을 걷게 될 기대되는 후배의 모습이다. 이제 선배들이, 팀장이 모범을 보이고 차근차근 잘 가르쳐 주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팀의 막내가 들어옴으로써 팀에 끼칠 순영향은 그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오랜만에 즐겁게 이런저런 회사얘기, 영업얘기,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 얘기들을 늦도록 나누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한다. 나중에 우리 아들이 세상에 나올 때 어떤 세대로 불릴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지원 씨가 보여준 순수함과 귀여움은 꼭 가졌으면 싶다는 부질없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달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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