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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업본부장 한상봉 Jan 15. 2024

어느 공무원이 보내는 3일간의 오늘 하루

난 ''을 좋아한다. '달, 별, 물, 불, 술, 꿀...'      

그래서인가? 어제보다는 'ㄹ'이 들어가는 오늘이 더 좋고 내일이 더 좋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 성격 탓이기도 하고 당장 오늘 해야 할 일 처리에도 버벅대는 초보 공무원이다 보니 어느 영화 대사에서처럼 어제도 내일도 살지 못하고 오늘만 사는 중이기도 하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다 하루지만 어제 하루, 내일 하루라는 말보다는 오늘 하루라는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하루의 무게와 느낌을 오늘 더 길게 혹은 짧게 체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에는 왜 이렇게 오늘따라 비행기가 낮게 날고 있냐는 민원전화를 받았다. 무언가 말투에서 불안함을 가지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군부대 훈련 연락을 사전에 못 받았느니 국방부에 문의해 보라느니 같은 대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식사는 잘하셨는지, 더운데 밭일은 좀 삼가시는 게 좋다느니 같은 일상의 대화로 안심을 시켜 드리고 아마 내일은 비행기가 본 궤도에서 날것이고 아직 전쟁의 기미는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위로로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오늘 한 분의 걱정을 해소시켜 드렸다는 작은 보람은 보너스라고 생각하면서.     

날씨가 더워서인지 고양이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한 번은 명복을 빌어줘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도 신고를 받고 그 친구들을 보내주기 위해 봉투와 집게를 챙긴다. 사람으로 치면 객사인데 장례를 치러주지는 못해도 수의라도 잘 입혀주자는 생각에 늘 종량제봉투를 두 개씩 챙긴다. 조만간 외주업체로 로드킬 처리가 넘어간다고 하는데 일견 반갑기도 하지만 무언가 보람 있게 하던 일을 넘기게 된 거에 대한 아쉬움도 살짝은 있다. 같은 업무를 하는 다른 읍면의 공무원들에게 무지하게 욕먹을 일인 건 맞지만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공무원에게 오늘은 어제 못한 업무를 꼭 마무리해야 하는 마감의 시간임과 동시에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넘길 수도 있는 미룸의 시간이기도 하다. 학교 다닐 때처럼 정해져 있는 수업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자료 제출일의 압박이 있고 오늘 꼭 방문 드리겠다는 민원인과의 약속도 있다.      

늘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오늘의 기준이 다르다면 나에게는 언제까지가 오늘일까? 물리적인 자정까지일까 아니면 잠이 들어 의식이 없어지는 그 순간까지일까?      

그래서 난 결심했다. 똑같은 24시간이 오늘이지만 그걸 나눠야겠다고. 나에게 오늘은 3일이다. 하루는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는 날이고 또 하루는 집에서 혹은 밖에서 가족과 지인들과 보내는 날이고, 마지막 하루는 잠과 함께 보내는 날로 생각하기로.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을 살아 보니 훨씬 더 하루가 여유로워졌다. 첫날은 조금 더 민원인들에게도 편안한 말투로 응대하고 둘째 날은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마지막 날은 어차피 자는 시간이니 그 나름도 행복하다.     

오늘을 하루로 생각하지 말자. 무슨 복잡한 양자역학이니 상대성원리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며 물리적인 것으로만 오늘을 정의하지 말고 나에게 중요한 일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오늘을 살아 보자. 그러다 보면 첫날의 스트레스도 둘째 날에 다 잊고 풀어버리고 이틀 동안의 피곤함도 마지막 날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는 마법을 기적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난 이틀째를 살고 있다. 곧 마지막 날을 보내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달과 별을 보고 술도 가볍게 한잔해야겠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다시 활기차게 오늘의 첫날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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