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셋은 공히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셀카는 물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일도 별로 없다. 다른 어떤 가족들보다도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냄에도 불구하고 그저 수다 떠는 일에 집중할 뿐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한 어떤 물리적 액션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후회가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데 너무 무심한 건 아닌가 하고. 특히 요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뜬금없이 올여름에 갔던 가족여행의 잔상이 불쑥불쑥 계기도 없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이유 없이 그냥 생각이 난다. 그리고 참 좋았지라고 혼자 미소를 짓는다.
예전에 학교에서 국어를 배울 때 다양한 장르를 우린 경험했다. 시, 소설, 수필 이런 건 기본이고 꼭 빠지지 않는 하나가 바로 기행문 아니었던가? 옛날로 치면 박지원의 열하일기, 최근으로 치면 정비석의 산정무한 같은 기행문을 지금 생각하면 참 쓸데없이 문구 하나하나를 분석해가면서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결론은 무엇이었겠는가? 작가가 그 여행을, 순례를 언젠가는 다시 꺼내 기억하고 싶어 기록한 것 아니었겠는가? 우리 가족의 여행 기행문이 수십 년 수백 년 뒤에 학생들의 교실에서 분석될리도 없고 원하지도 않지만 난 그냥 나중에 꺼내어 기억을 하고 싶다.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으니 글로라도 말이다.
2024년 여름의 가족여행은 기획부터 참신했다. 아들이 어렸을 때처럼 날짜와 시간을 길게 잡아 이동과 숙소를 한참 전부터 잡고 괌이나 사이판을 가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세 식구 각각 부담이 없는 수준으로 일수를 잡은 뒤 자가용으로 이동 가능한 장소가 첫 번째 전제조건이었고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일직선으로 한 번에 스케줄을 잡아야 하는 부담이 사라졌다. 우린 휴가를 1차와 2차로 나누어 기획했다. 1차는 소위 말하는 호캉스. 집이랑 멀지 않은 서울에 숙소를 잡고 아들이 주로 놀러 가는 강남을 중심으로 1박2일의 일정을 잡았다. 대신 좀 비싸더라도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걸 먹는 것이 두 번째 전제조건이었고 그러다 보니 우린 5성급 호텔의 따뜻한 옥상 스파도 즐기고 낮에는 식당으로 밤에는 모던 바로 운영되는 청담동 핫플레이스에서의 저녁도 맛있게 즐겼다. 대한민국 최고 레스토랑의 메뉴에 떡볶이가 있는 것도 신기했는데 너무 맛있는 건 더 신기했다. 살 것도 아니지만 명품 스트리트에서의 아이쇼핑과 산책, 특히 아들이 자주 간다는 LP 바에서의 한 잔의 맥주는 엄마 아빠의 학생 때의 정서도 소환하면서 귀도 호강하는 호사였음을 기억한다. 옆자리에서 술에 만취되어 있던, 마치 일제 강점기 암울한 지식인 같은 포스의 언론사 기자들의 서툰 노래도 인상에 깊게 남는다. 참 정겨운 모습이었다.
2차는 2박 3일의 부산 여행. 몇 년 전 아들이 스무 살 시절 가족이 한번 갔었던 부산 여행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랄까?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나이와 생각과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된 일정이었다. 숙소도 1박은 찜질방에서 다음 1박은 최고급 호텔에서의 극과 극 체험이어서 나름 신선했었던 같은데 그 찜질방에서의 극한 체험 때문에 우리 집은 여행 후 매트리스를 모두 업그레이드하게 됐다.
부산은 참 낭만적인 도시다. 특히 해운대는 높게 뻗은 마린시티와 엘시티가 바다를 품고 있는 비주얼이 밤이 되면 더더욱 인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풍경에서 있을 건 다 있는 식당과 술집, 그리고 자동차 매장. 잠깐 들렀던 BMW 매장에서 GD가 탄다는 우리나라에 몇 대 없다는 최고급 플래그십 SUV를 구경한 것도 재밌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건 외국인이 가득 차 있던 Pub에서의 맛있는 맥주. 아들이야 앞으로 거의 일상이겠지만 집사람과 나는 처음 보는 술집의 풍경이었는데 마치 외국에 여행 간 느낌을 받아서 좋았던 듯싶다.
앞에서 잠깐 얘기했지만 이번 부산 여행은 다른 의미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몇 년 전의 부산 여행은 여러 가지의 이유로 여행이었지만 무언가 우울했었다. 무엇보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다 보니 아들 녀석과 기분 좋게 술 한 잔 못 했던 것이 늘 맘에 걸렸는데 그 모든 걸 훌훌 털 듯이 술도 많이 먹고 얘기도 실컷 하고 적당한 기간의 일정으로 피곤함도 덜고 모든 것이 행복했던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흥겨운 술집과 예쁜 카페에서 나누었던 진지한 얘기들은 또 하나의 덤이다. 마지막 오는 길에 바다와 레일바이크가 보이는 한정식집에서의 점심 식사가 그 행복의 정점을 찍는 끝판 스케줄이었음도 생각이 난다.
예전에 회사 후배가 SNS에 가족의 일상을 올리면서 그 테마명을 ‘가족을 사랑하다’라고 지은 걸 보고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주로 사진을 올렸지만 이번 글을 계기로 난 그때그때의 소소한 가족의 기억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누군가가 읽어줬으면 하는 게 아닌 오래된 사진을 서랍에서 발견한 것 같은 반가움을 나중에 아주 나중에 글로 느껴보고 싶으니까. 그 첫 번째 글이 2024년 여름휴가이다. 그래서 묻는다. 다(큰 아)들(과) 가족여행 어떻게 가세요?